[지난건대 다시읽기]는 『건대』의 지난 호 중 다시 읽어볼 만한 양질의 기사들을 선별해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봄입니다. 겨우내 눈을 맞으며 잠자코 지냈던 나무들이 너나없이 요란히도 잎을 피어내는 계절입니다. 긴 방학을 끝내고 오랜만에, 또는 처음 캠퍼스를 방문하는 학우분들을 위한 이번 건빵레터는 2022년 봄 122호(물결)의 <성장>입니다. 우리 학교에 있는 나무들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 기사를 읽고 직접 실물을 찾으러 캠퍼스를 거닐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이따금 들리는 학교는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봄에는 만개한 꽃들이, 여름에는 완연한 초록이,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들이, 겨울에는 고고한 수목들이 건대를 단장한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새하얀 눈이 오던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약 2년 만에 드디어 캠퍼스가 문을 열었다. 처음 혹은 오랜만에 캠퍼스를 방문하는 우리 학우들을 위해 우리학교에 있는 나무들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호호호 메리크리스마스
내가 그린 그림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던 경험이 있는가? 나에겐 딱 한 번 있다. 초등학생 무렵 크리스마스 이브날 잠자리에 들기 전 옷장에 들어가 산타 할아버지께 한 해간 선행을 늘어놓고 악행들을 반성하며 받고 싶은 선물을 떠올렸다. 놀랍게도 다음 날 머리맡에는 그토록 바라던 소꿉놀이 세트가 놓여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당신께서 놓아둔 선물이 아니라고 부정하시다가 이젠 진짜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신다. 내가 산타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 특별한 날에 빠질 수 없는 트리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자생종이다. 구상나무는 밋밋하게 자라는 육지부와는 달리 줄기에 굵은 가지가 촘촘하게 붙어 있으면서 높게 자라지 않아 크리스마스 트리로 제격이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 앞에 나란히 심겨 있는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에 담긴 추억으로 보내주는 ‘포트키*’가 된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면 거리에 빨강과 초록으로 치장하는 가게들과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캐럴들 속에서 25일 날엔 눈이 올지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했던 따스했던 과거를 다시금 떠올린다.
산타를 기다리는 한 해도 나쁘지 않다. 삭막해진 일상 속에 색채를 더할 소중한 기회로 꼭 붙잡고 있다. 머리맡에 간절히 바라던 선물이 놓여있진 않지만, 어쩌면 소소하게 선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주식의 상승이라거나 이유 모를 행운이라거나… 밑져야 본전이니. 올 한해는 우리 다 함께 산타를 기다려보는 것이 어떨까. 잠결에 산타가 행복 한아름 들고 들를지 모른다.
“호호호 메리 크리스마스”
*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단어. 포트키에 닿으면 지정된 장소로 순간 이동한다.
중앙도서관 앞 동상의 오른팔 쪽에 위치한 세 그루의 구상나무. 가운데 구상나무는 고사했다.
건대 병원 맞은편 부속동 앞 수수꽃다리
사랑이란
첫사랑을 느껴본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건국대학교 병원 옆을 따라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생명과학부속관 앞에 심겨 있는 수수꽃다리를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꽃과는 달리 쌉싸름한 잎 때문에 첫사랑이라는 꽃말이 붙었다고 한다. 아직 그 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잎을 살짝 맛보기를 권한다.
수수꽃다리는 한 쌍씩 짝을 이룬 잎들이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을 시작한 이들의 모습처럼 풋풋해 보이기도 한다. 줄기를 기준으로 양쪽의 두 잎은 꼭 같은 모습을 띠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도 모양도 각기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그렇지 않을까. 비슷해 보일지라도 같은 것은 없다. 이 순리에 따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면 된다. 다름이라는 인지 하에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삶은 온통 사랑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과정에서 어떠한 종류이든지 사랑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처음에는 가슴이 시키지만, 나중에는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나의 다름을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방과 나의 다름을 사랑하며 그와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한 발자국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성장 중
마지막으로 꼭 소개하고픈 나무는 회양목이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성장하는 이 나무는 1년에 0.01mm 정도 자란다. 겉으로 보기엔 작아 보일지라도 그 몸집 속에 엄청난 세월의 내공을 품고 있다. 이 나무의 성장은 다른 나무는 가질 수 없는 특별함을 선물한다. 오랜 시간 동안 성장하는 것 때문인지, 오랜 수명과 견고함을 갖는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끝없이 성장을 준비하며 조금씩 전진해 나아간다.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회양목은 우리에게 느림의 미학을 시사한다. 빠름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그 속도에 휩쓸려 종종 자기 자신을 잃고, 주위를 의식하며 스스로 뒤처진다고 주저앉고는 한다. 하지만 뒤처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과정과 결과의 의의는 타인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속도에 발맞추며 자신에게 집중한다면,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도 회양목이 곳곳에 위치하니 꼭 확인해보자. 자주 가는 곳에 회양목이 심겨 있다면 더욱 좋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성장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변함없어 보일지라도 단단한 내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속하여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시 멈춰 있지 않고 성장을 계속하길 염원한다.
중앙도서관 앞 회양목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있는지도 몰랐던 꽃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꽃을 피우고 지운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혼란 속에서도 그들은 묵묵히 그들만의 박자에 맞추어 연주한다. 모든 것엔 정성이 깃들어 있다. 그들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들만이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새로움이 가득한 봄이 성큼 다가왔다. 설렘 가득한 마음과 함께, 활기찬 2022년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