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지난건대 다시읽기]
당신의 먹방이 반가운 이유
교지 전 편집위원 우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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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건대 다시읽기]는 『건대』의 지난 호 중 다시 읽어볼 만한 양질의 기사들을 선별해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유튜브, 자주 시청하시나요? 평균 식사량을 훌쩍 넘는 먹방을 보며 유튜브 콘텐츠 제작도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신 적 있나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평적이고 일상적인 콘텐츠들을 시청하신 경험도 있을 겁니다. 유튜브가 내재하는 평등한 구조에 기초해 '애매한 재능'을 응원하는 이번 건빵레터는 2020년 겨울 120호(팔레트)의 <당신의 먹방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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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든 콘텐츠는 유튜브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희망직업 3순위는 ‘크리에이터(유튜버)’로* 줄곧 인기 직업이던 ‘의사’의 순위를 제쳤다. 진지하게 방송인을 꿈꾸는 이들은 유튜브 개인 채널로 영상 경험을 쌓기 시작했으며, 기성 방송국들은 방영되었던 시트콤이나 예능을 유튜브 특유의 짧은 호흡에 맞게 편집하여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는 영상 전문가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개방적인 구조 아래에서 ‘일반인’들은 자신이 집밥을 먹는 모습, 장 보고 카페에 가는 사소한 생활, 출퇴근 준비 등 본인의 색깔을 묻힌 평범한 일상을 영상에 담아 노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평성은 콘텐츠 제작의 주류를 이루는 청장년 세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실버 유튜버와 키즈 유튜버가 청장년 유튜버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보이며 주목 받는다는 사실은, 유튜브가 내재한 평등함을 단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사례였다. 본업이 어떻든, 어느 대학을 나왔든,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지 상관 없다. 그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굴하고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 되는 유튜브의 시대가 나는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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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기자, 초등생 장래희망 유튜버가 3위, 의사 제쳤다, 중앙일보, 2019.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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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애매한 재능’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물론 재능을 가늠할 수 있는 정확한 척도는 없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굳이 따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함께 지내다 보면 어느 새인가 나는 주변의 몇몇보다 무엇을 좀 더 잘하고, 어떤 것을 못하는 지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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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애매한 재능’을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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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각자의 후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후회’ 혹은 ‘미련’으로 구분 지을 수 있을 법한 그 대화 주제의 다른 이름은 ‘애매한 재능’이었다. 레퍼토리는 다들 비슷했다. 대략 중학생 무렵 치기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학교 친구들보다 월등히 잘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 재능이 지금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성공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리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할수록, 생각보다 너무 작았던 우물을 벗어날수록 자신의 재능은 ‘재능’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초라한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때 자랑해마지 않았던 그 재능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장점 비스무리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애매한 재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재능의 종류를 손에 꼽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만난 사람들과 내 경우를 놓고 따지자면 단 세 가지였다. 공부, 미술, 음악. 이 같은 분류는 우리가 중고등학생 시절을 기점으로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하여 주어진 선택지와 많이 닮아 있다. 작은 몸만큼이나,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며 꽤 순진했던 그 때의 우리가 ‘이게 좋을 것 같아’ 하는 마음으로 하게 된 선택은 진학을 하면서 지나온 경력이 되었고, 가야할 진로가 되었다.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줄은 몰랐었는데, 내 정체성을 표상하는 가장 큰 줄기가 되었다.
우리는 당연히 내 삶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에 많은 시간을 할당하고, 또 가장 깊게 마음을 쓸 수밖에 없다. 특히 경쟁 구조의 사회에서 공학이든, 문학이든, 경영학이든, 사회학이든 공부를 하기로 선택한 이들은 이 사회에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 내가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인지 가늠해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미약한 부분을 발견하고 좌절하곤 한다. 예체능, 그리고 다른 분야를 선택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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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의 재능이 단 세 가지 -더 세 봐도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힐 것만 같다- 단어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일까? 머리가 좋거나, 그림을 수준급으로 그리거나,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릴 노래를 작곡하거나 부를 수 있는 사람 이외에도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진심으로 칭찬을 보낸다. 이를 테면 컵받침, 식탁보, 수세미부터 니트 조끼, 가방까지 척척 만드는 우리 엄마의 뜨개질 솜씨, 또박또박 공들여 정갈하고 반듯한 친구의 손글씨, 더운 날씨에도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화장술 등 배워본다고 해서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이것들을 우리는 ‘재능’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끌어들일 수 있는, 하다 못해 일 인분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사회는 쉽게 ‘재능’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뜨개질, 손글씨, 화장술은 ‘잔재주’에 불과하다. 모두가 이런 완고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왔으니,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잔재주’들은 유튜브 플랫폼을 만나면서 변화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유튜브의 시대를 반가워하는 이유이다. 물론 사회가 제안하는 일정한 선택지에 따라 재능의 종류를 결정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 역시 꽤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재능을 필요로 하는 장은 넓고, 이미 견고한 산업이 되어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완벽한 재능을 가지지 않아도 관련된 많은 사람을 늘 필요로 한다. 평범한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애매함을 가지고서도, 직장 생활을 영위하고 취미를 즐기며 가족, 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손글씨도 잘 쓰고 음식 솜씨가 좋으며 그 음식을 복스럽게 먹을 줄도 아는 누군가가 ‘애매한 재능의 저주’를 받았다면서 스스로에게 제약을 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장벽 없이 카메라와 와이파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며, 또 모든 이들에게 노출 가능하다는 유튜브 플랫폼을 만나면서 내세우기에 멋쩍었던 내 ‘잔재주’는 비로소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입짧은 햇님’이나 ‘대도서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해서, 유튜브의 수면 위로 떠오른 우리의 재능이 격하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유튜브에 먹방 채널을 검색해보자. 수십개의 채널 중 어느 것은 구독자 100만을 넘기는가 하면 어떤 채널은 구독자 1000명을 겨우 넘겼다. 그 러나 실제로 영상을 시청해보면 두 유튜버 중 누가 더 잘 먹고 많이 먹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유튜버는 월 n백만 원의 수익을 올린다는 식의 소문이 무성한 상황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두 유튜버 모두 각자의 구독자 100만명과 1000명,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시청자에게 기쁨과 휴식, 때로는 야식을 참는 용기를 제공한다는 것뿐이다. 잘 하는 일을 통해 대가를 받지 않고 다수에게 유익함을 주는 일. 유튜브의 시대에서 우리의 잔재주는 주목할 만한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재능 기부의 형태로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 좋아하는 행위를 꾸준히 방송의 형태로 행한다는 것, ‘나의 나됨’을 실현하며 자아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튜브가 지닌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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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감탄할 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 참 슬픈 사실이다. 재능을 뜻하는 영단어는 우리가 선물이라는 의미로 잘 알고 있는 ‘gift’이다. 즉 재능은 하늘이 주는 선물,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재능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사람을 만나면 무력감에 빠져버리고는 한다. 내게도 저런 특출난 재능이 하나쯤 있었다면. 그러나 시각을 달리 해보면 우리에게 재능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관습적인 기준에 따라 스스로 이미 주어진 재능을 저평가하는 시각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잘 먹고, 게임을 잘 하고, 글씨를 잘 쓰고, 말을 재밌게 하는 등의 아주 사소한 행위가 어엿하게 콘텐츠 주제가 되고, 더 나아가 그로 벌어들인 수익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대기업 연봉을 웃돌기도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퇴사할 수 있는 세상이 아직까지 도래한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가 일상을 깊이 침투하면서 자연스레 재능을 바라보던 사회의 엄격한 시각은 점차 관대해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선명하다. 물론 그 관용을 스스로에게 베푸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지만, 완고한 기준을 조금은 허문 채로 스스로의 재능을 헤아려보면 어떨까? 당신의 재능은 알고 있던 것보다 꽤 많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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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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