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창경궁의 벚꽃이여, 그댄 무얼 보았는가
편집위원 김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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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달력을 석 장 넘기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건대교지 독자 여러분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봄만 되면 꼭 벚꽃 구경을 가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벚꽃 구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 제가 가져온 이야기는 바로 우리나라 벚꽃 문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창경궁의 벚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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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1908~1909), 구한국(대한제국)에 머물던 내지인(일본인)들이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벚꽃)를 그리워했다. 이에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등에 5~6년 된 사쿠라 나무를 일본에서 들여와 심은 것이 조선 사쿠라의 시초다.”
— 1939년 4월 16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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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가 웬만큼 자란 1918년부터 창경궁은 벚꽃 명소가 됐으며 1924년 벚꽃철부터는 해마다 야간에도 개장했다. / 서울역사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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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본격적으로 벚꽃을 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어요. 대략 1908년이었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산과 들에 벚나무는 존재했지만, 경관을 위해 대규모로 식재되지는 않았거든요.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은 대한제국이 저물어가던 시기, 동식물원으로 전락한 창경궁에 집중적으로 심어지기 시작했어요. 이때 식재된 벚나무만 해도 약 300그루에 달한답니다.
이후 1924년부터 창경궁에서는 밤 벚꽃놀이, 이른바 ‘야(夜)사쿠라’가 시작되며 벚꽃은 단순한 식물을 넘어 근대 도시 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됐어요. 특히 밤 벚꽃놀이는 엄청난 인파를 끌어모았는데, 1924년 약 13만 명, 1930년 20만 명, 1934년에는 약 30만 명에 육박했답니다! 당시 경성의 인구가 약 30만 명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 아닌가요?
“경기도 수원의 전체 수요 전등이 18만 와트라는데… 창경궁에는 20만 와트의 조명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었던 화려한 전등과 분수까지 더해지며, 창경궁은 벚꽃과 함께 거대한 유흥 공간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창경궁 벚나무 아래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이 한때 유행이기도 했답니다.
“용산 육군병원에서 입원 중인 용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비원(창덕궁 후원)에서 다과를 베푼 뒤, 창경궁 밤 벚꽃놀이 행사를 열었다.”
— 『매일신보』, 1941년 4월 23일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1940년대, 창경궁의 벚꽃은 일본을 위해 싸우는 군인들을 위로하는 이벤트로 활용되기도 했어요. 심지어 전쟁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의 사절단을 초대해 기생과 함께 놀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이처럼 창경궁과 벚꽃은 일본 제국의 유흥과 선전의 장으로 사용되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벚나무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광복 이후
놀라운 사실은 광복 이후에도 창경궁의 벚꽃놀이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거든요. 1946년, 해방 직후 창경궁은 ‘시민 위로’라는 명목으로 식물원 광장에 야외 특설무대를 설치하고 벚꽃놀이를 개최했어요. 1972년과 1973년에는 방문객이 120만 명을 넘어섰고, 1974년에는 행사 기간이 5월 말까지 연장되며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찾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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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창경궁 앞 도로상황 / 한국일보 우: 창경궁에서 밤벚꽃을 즐기는 모습 / 국가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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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경궁이 궁궐로서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과정에서, 이 벚나무들은 대부분 베어졌어요. 1983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은 일제강점기 동안 훼손된 궁궐의 기능과 공간을 되돌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창경궁을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던 시설들과 함께 벚나무 역시 정비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들여온 왕벚나무는 식민지 시기의 흔적으로 인식되며 상당수가 이때 자취를 감췄어요.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매년 꽃을 피웠던 창경궁의 벚꽃.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순한 봄의 풍경이 아니라, 한 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존재이기도 했어요. 벚꽃은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들던 젊은이들을 보았을 것이고, 전등 아래서 근대의 화려함에 감탄하던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을 테죠. 동시에, 궁궐이 놀이공원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식민지 권력 아래에서 그 의미가 바뀌는 모습 또한 묵묵히 지켜보았을 거예요.
밖에 벚꽃이 흩날립니다. 참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우리 같이 물어보아요.
창경궁의 벚꽃이여, 그대 무엇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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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이기환, "창경궁이 ‘벚꽃놀이 최대명소’ 됐던 사연", 주간경향, 2022.04.22. 구보, "왕 위로한다며 심은 도쿄 벚나무…미워도 꽃은 꽃일 뿐", 국방일보, 2025.04.17. 김현숙, 「창경원 밤 벚꽃놀이와 夜櫻」, 『한국근현대미술사학(구 한국근대미술사학)』, 2008, 19: 139-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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