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찬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어김없이 길거리에서 고소한 반죽과 달콤한 팥 냄새가 우리를 유혹하죠. 겨울철 외투 주머니에 3천 원쯤은 꼭 품고 다녀야 하는 이유, 바로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늘 무심코 베어 무는 정겨운 길거리 간식이지만, 이 작은 빵 안에는 꽤 파란만장한 역사와 흥미로운 시대상이 담겨 있습니다.
1. 귀하신 '도미'는 어떻게 서민의 '붕어'가 되었을까?
붕어빵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말 일본의 '타이야키(鯛焼き)'와 만납니다. 일본어로 '타이(鯛)'는 도미를 뜻하는데, '경사스럽다'라는 뜻의 '메데타이(めでたい)'와 발음이 비슷해 행운을 부르는 고급 생선으로 통했습니다. 귀해서 자주 못 먹는 도미를 빵으로나마 즐기려던 것이 타이야키의 시작이었죠.
그림 1) 일러스트 김민재
1930년대, 이 제빵 기술과 틀이 한국으로 건너오며 완벽한 현지화를 거칩니다. 도미가 낯설었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만만하고 친숙한 물고기는 동네 하천에서 흔히 잡히던 민물고기 '붕어'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생김새도 변했다는 것입니다. 타이야키가 꼬리를 빳빳하게 쳐든 사실적인 도미 모양이라면, 한국의 붕어빵은 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2. 서민의 눈물과 허기를 달랜 '시대의 거울'
붕어빵이 전국적인 국민 간식으로 자리 잡은 이면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가 대량으로 풀리면서 적은 돈으로 배를 불릴 수 있는 밀가루 음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진 1) KBS, 사진 2) 한국일보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붕어빵이 길거리를 점령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이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노점상으로 내몰렸고, 붕어빵 수레는 그들의 생계 수단이자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달콤한 안식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붕어빵 수레 앞에는 타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부터 용돈을 버는 학생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거리를 지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뭉클하게 녹아 있습니다.
3. '붕플레이션' 시대, 앱으로 붕어빵을 찾는 사람들
최근에는 밀가루와 팥, 가스비 등 원재룟 값이 폭등하는, 이른바 붕플레이션(붕어빵+인플레이션)과 노점 단속으로 인해 붕어빵 수레를 발견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2마리에 1천 원 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1마리에 1천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하죠.
하지만 붕어빵에 진심인 한국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소비자들은 '가슴 속 3천 원' 같은 위치 공유 앱을 통해 자발적으로 동네 붕어빵 노점의 위치와 영업시간을 제보합니다. 집이나 학교 근처에 붕어빵 가게가 있는 곳을 뜻하는 '붕세권'은 이제 부동산 역세권 못지않게 중요한 삶의 질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림 2) 일러스트레이터 Tommy
속 재료의 진화도 눈부십니다. 근본인 '팥'과 '슈크림'의 양대 산맥을 넘어 피자, 고구마, 누텔라, 마라 불닭까지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길거리를 벗어나 전문 디저트 카페에서 프랑스식 페이스트리 반죽에 굵은 버터를 통째로 넣은 '프리미엄 붕어빵'을 선보이며 오픈런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라이벌 '팥붕파'인가요, 아니면 '슈붕파'인가요? 혹시 후문이나 건대입구역 주변 등 우리 학교 근처에 나만 알고 있는 숨겨진 '붕세권 성지'가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다음 주에도 갓 구운 붕어빵처럼 따끈따끈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
참고 자료
- 윤덕노, "야키", 동아일보, 2011.12.28. - 주영하,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휴머니스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