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초임 교사 A씨는 흡연을 하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담배를 구했는지 추궁하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당황했다. A씨의 제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담배를 구했다. 트위터 해시태그 은어인 #담구(담배 구합니다), #댈구(대리구매)를 통해서 성인 구매자와 연락해 담배를 얻었다. A씨는 “성인 구매자가 아직 초등학생인 여학생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담배를 사줬을 리 없다”라며, “제자들이 흡연을 한 것보다 아이들이 순진하게 모르는 성인에게 SNS로 담배를 부탁한 것이 더 속상하다”라고 밝혔다.
n번방 사건이 최초로 보도된 지 3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가해자들이 구속되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법을 바꾸어 형량을 강화했고, 성범죄와 관련한 행정절차를 갈아엎었다. 전국이 분노와 반성으로 성범죄 체계를 바꾸어 갔지만, 그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학교 현장이다. 3년 동안 학교 현장에서의 성교육은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조차 어떻게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해야 할지 모른다. A씨는 “제자들이 그런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았었느냐”라는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했다.
n번방 당시 피해자들의 1/4 이상이 미성년자였다. 그리고 여아들만 대상으로 하는 범죄도 아니고, 조주빈을 마지막으로 3년 전에 끝난 문제도 아니다. 지난달에는 남아들을 대상으로 1570여 개의 성착취물을 제작한 30대 남성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 현장은 유독 성교육에 둔감한 것일까?
(지난달 27일 남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김영준씨(30). 그는 2011년부터 10년간 79명의 미성년 남아들을 대상으로 1570여 개의 성착취물을 제작하였다./사진=뉴스1)
아이들이 알기엔 너무 끔찍한 현실?
제도적인 원인을 지적하자면, 국가 성교육 표준안이 2015년을 마지막으로 7년째 아무런 개선이 없고, 이마저도 강제적인 사항이 아니다. 성교육 표준안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2015년은, 청소년들에게 SNS가 일상화되지 않았으며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인식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환경은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디지털 성범죄도 덩달아 고도화되고 지능화되었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 범죄의 손길은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청소년들을 향해 뻗고 있지만, 이것을 물리칠 어떠한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부실한 표준안조차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표준안은 가이드라인일 뿐 개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게 되어있다. 표준안이 바뀌더라도 구속력이 없으면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렇다면 독립적인 성교육 권한이 있는 개별 학교의 입장은 어떠할까. 40년 차 원로 보건교사에 따르면 “교내 성교육은 보건교사가 담당하는데, 보건교사의 충원율이 낮아 대부분 나이가 많다. 결국 성교육 표준안에 의무가 있지 않은 이상, 이들은 3-40년 동안 해왔던 보수적인 방식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성교육의 개선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제도 이외에 학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학부모이다. 아무리 학교가 미진하더라도 학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성교육의 개선을 요구하면 학교는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지금까지 디지털 성교육의 개선이 없었던 이유는 학부모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충남 지역에서 외부 강사로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디지털 성범죄 연구소의 이덕영 부소장은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들의 냉대와 무관심이 성교육의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이 부소장은 왜 학부모들이 n번방 사고를 지켜보고도 디지털 성범죄에 둔감하냐는 질문에 “n번방 피해자 중 적지 않은 수가 미성년자인 사실을 잘 모른다”라고 답했다. 그는 “오히려 어릴수록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고 쉽게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다”라고 덧붙였다. 으슥한 뒷골목에서 발생했던 유괴범죄가 디지털 속으로 옮겨간 것이라 이해하면 쉽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학부모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라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에게 n번방 사건은 “아이들이 알기엔 너무 끔찍한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그러나 끔찍함과는 상관없이 현실은 현실이다. 첨단화되는 청소년 대상 범죄를 막기 위해선 전술한 바와 같이 7년 동안 개선이 없는 성교육 표준안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모두 특수성을 가진다. 기존의 성범죄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길들인 뒤 성폭력을 저지르는 “그루밍 성범죄” 형태를 띤다. 가해자들이 그루밍을 할 때 사용하는 발화를 분석해 아이들에게 대비시켜야 한다. 유괴범의 “아저씨가 과자 사줄게”라는 말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하듯이 말이다. 또 아이들은 범죄에 노출되었을 때 부모나 교사에게 말하기 어려워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게 해야 한다. 더불어 학교의 자율권을 인정하되 디지털 성범죄와 같이 중요한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표준안뿐만 아니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사고 대처 매뉴얼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사회와 학부모 전반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무딘 관료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여론이다. n번방에 대한 대처는 세월호 참사와 정인이 사건 이후 안전과 아동학대에 관한 방지책이 재빨리 마련된 것과 대비된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아이들은 범죄의 손길에 노출되어 있다. 과거와 달리 그 양상은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아서 대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학교 당국과 학부모는 더욱 치밀하게 맞서기는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적의 무기는 첨단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구식 벙커 속에 잠자고 있다. 유비무환의 원칙은 교내 디지털 성범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