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확실해?” “틀림없어”
삽과 정체불명의 검은 봉투를 든 이들이 거리 한편에 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푸욱. 푹.
“아무도 안 오는 거 맞아? 사람 오는지 안 오는지 잘 봐”
모두 잠든 시간, 거리에 은밀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조금만 더 파면 될 것 같아” “좋아 빨리 묻어” “도망쳐!”
정신없이 도망친 그들이 있던 자리에, 깨진 보도블록 틈 사이로 한 송이의 꽃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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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
게릴라 가드닝이란 적을 기습적으로 공격한다는 뜻의 ‘게릴라(Guerrilla)’와 정원을 조성하 는 ‘가드닝(Gardening)’이 합쳐진 말로,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남의 땅을 불법으로 점유한 뒤, 그곳을 정원으로 꾸미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정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삭막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푸르게 바꾸려는 목적을 가진 운동이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남의 땅을 불법으로 점유한다는 말이 자칫 깡패들이 할 법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 방치되고 버려진 땅을 깨끗이 치우고 꽃과 나무를 심는 활동을 통해 땅 주인에게 관리의 중요성과 경각심을, 시민들에게는 환경개선의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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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배경
가드닝과 전투라는 독특한 조합은 그 시작에서 엿볼 수 있다. 1973년에 미국의 예술가 리즈 크리스티가 한밤중에 친구들과 함께 ‘그린 게릴라’라는 이름으로 뉴욕 휴스턴 거리의 공터를 꽃밭으로 만들어버린다. 다음 날 쓰레기가 가득했던 공터가 꽃밭으로 변한 모습에 뉴욕 시민들은 이를 반겼으나, 공터 주인은 리즈와 그의 친구들을 ‘불법 침입’이라는 이유로 고소했다. 리즈는 아무리 자신의 땅이라도 이웃에게 불편을 끼치고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버려두는 것은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며 도리어 땅의 주인을 상대로 역소송을 진행했다. 이렇게 시작된 소송은 7년 동안 지속됐고, <뉴욕 타임스>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리즈의 그린 게릴라 운동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소송은 뉴욕시에서 이 땅을 사들여 공원을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후 리즈의 활동이 ‘게릴라 가드닝’이라 불리며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게릴라 가드닝 활동은 주로 단체로 이루어지며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때문에 회원의 수나 신상을 알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게릴라 가드닝은 자신의 땅이 아닌, 버려지거나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타인의 땅 혹은 공유지를 남몰래 기습적으로 가꾸는 일이기에, 소송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시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해당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게릴라 가드닝을 공공을 위한 긍정적인 행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 활동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서울시와 대전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공개적으로 가드너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 게릴라 가드닝 형식과는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버려진 공간에 꽃향기를 불어넣겠다는 기존의 의도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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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의 활용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가드닝 사업을 하고 있다. 일례로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이 있다. 더 깨끗하고 녹색인 환경,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시민 녹색 문화운동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일상생활 속에서 꽃과 나무를 쉽게 심고 가꿀 수 있도록 장려한다. 시민과 소규모 자영업자, 기업, 단체, 서울시, 자치구 등 다양한 개인 및 단체가 자신들이 영유하고 있는 주변을 가꿔 녹화 활동을 진행한다. 이 결과, 골목길 경관이 개선되었고, 동네 빈 땅에 녹지가 조성되었다. 골목길 경관은 단순히 쾌적함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낙후되고 방치된 이미지로부터 멀어짐으로써 범죄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한다. 학교 측 은 교내 녹화지 조성을 통해 냉난방 비용을 절감하고, 학생들의 호흡기질환을 개선할 수 있었다. 또한 저소득층 어르신들은 가로수 및 띠 녹지 주변 청소를 맡아 일자리를 얻었다. 이렇게 가드닝 활동은 단순한 심미적 효과를 불러내는 것만이 아닌, 그 이상의 다양한 효과를 창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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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환경재단이 골목 귀퉁이 쓰레기 더미로 방치된 공간(왼쪽)을 '게릴라 가드닝'으로 예쁘게 꾸며 미니정원으로 재탄생시킨 모습(오른쪽). (제공:안산환경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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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환경재단 안산마스터가드너들이 길가에 쓰레기 더미로 방치된 공간(왼쪽)을 '게릴라 가드닝'으로 예쁘게 꾸며 미니정원으로 재탄생시킨 모습(오른쪽). (제공: 안산환경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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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역시 게릴라 가드닝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여러 단체나 시민들과 협업하여 환경 보호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시로 ‘라이엇 게임즈’의 양재천 가드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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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가 양재천 일대에서 식목일 기념 씨앗 폭탄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씨앗 폭탄은 흙과 점토, 비료에 민들레, 맨드라미, 봉선화, 해바라기 등 꽃 씨앗을 섞어 반죽한 후 캐릭터 모양으로 굳힌 씨앗 덩어리다. 100여명의 게임 이용자들과 쿨라워가 씨앗 폭탄을 심으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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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flower 건국대학교 게릴라 가드닝 동아리 쿨라워>
우리 학교 내에도 가드너들이 활동 중이다. 수도권 내에 게릴라 가드닝 동아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나름 우리 학교만의 특색있는 동아리 중 하나이다. (조심스레 가입을 권해본다.) 쿨라워는 학교와 그 주변에서 가드닝 활동을 펼치고, 다른 단체와 협업을 통해 다양한 가드닝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2016년 청계천 가드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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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페트병에 꽃을 담아 벽면에 고정하는 페트병 정원, 폐타이어를 활용한 타이어 정원, 깡통 화분을 이용한 공중 정원, 작은 유리그릇 속에 식물을 심는 테라리움 정원 등을 만들며 청계천을 꽃밭으로 가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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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멀지않은 곳에서 그들의 손길을 찾아볼 수 있다. 동물생명과학대학교와 뒤편에 자리한 이 땅은 통로로 기능하여 유동 인구가 많으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근처엔 담배꽁초들과 담배 연기로 행인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띠었다. 잘 가꾸어지지 않는 이곳에 화려한 꽃들을 해마다 심고 가꾸는 가드닝 활동을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결국 주변에 별도의 흡연 공간이 새로 마련되며 학교의 변화를 피워냈다. 이곳은 개강과 함께 쿨라워 부원들이 직접 선정한 꽃들을 심고 가꾼다. 해마다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니 방문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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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도, 그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휑한 학교에 색채를 더했다. 21년 10월에 이뤄진 ‘꽃 숨바꼭질’은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부원들이 몰래 심은 꽃을 찾는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교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꾸어지지 않고 있는 땅을 찾아 꾸밀 뿐만 아니라,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학교에 오지 못했던 신입생들에겐 학교를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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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교내 곳곳에서 쿨라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5월 24일 그들은 인문학관과 언어교육원 앞, 도서관 CU 옆에 해바라기와 안개초 등의 꽃을 심었다. 필자 역시 이 활동에 참여하였다. 양손 가득 꽃을 들고 삽을 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주목된 시선에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수업을 들으러 온 문과대 학생들의 관심을 즐기며 인문학관 앞에 빈 땅을 꾸미는 데에 집중하였고, 교내의 자그마한 빈 땅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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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은 소외된 땅에 아름다운 꽃을 심어, 가드너에게 보람을 선물하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정화해준다. 거리를 걷다 보면, 주변에서 쉽게 꽃들을 볼 수 있다. 그들도 어쩌면 치열한 전투 끝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지나다니는 길, 문득 눈에 띈 꽃에 눈웃음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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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주소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120 제1 학생회관 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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