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늘 앞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맞춰 사람들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성장과 성공은 닿아있는 듯 보이며, 뒤를 돌아보는 행위나 멈춰있는 모습은 세상과 멀어지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기보다 어린 시절을 간직한 채 다른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가 만든 어른의 기준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들을 보고 철이 없다, 성숙하지 못하다 말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잣대로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동심은, 어른스러움보다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좋아하는 동화나 만화가 있으신가요? 어린아이나 보는 동화와 만화 영화를 보고 운 경험은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른에게도 어린 아이같은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 아닐까요? 현실이라는 벽에 잠시 잊어버린 동심을 꺼내 봅니다.
어린 마음, 동심(童心): 어린아이 같은 마음
어렸을 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순수함이 담긴 시선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걱정보단 희망을 떠올립니다. 그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 시간 같지만 사실 현재도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종종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처럼 동심을 가진 사람들도 독특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추억은 과거가 아닙니다. 보통 과거는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어린 시절은 계속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그 기억은 현재라는 시간과 이어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오기 때문에 과거가 아닙니다. 시간은 지나도 시절은 잊히지 않는 한 지나가지 않습니다. 동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을 맺은 추억처럼 보이지만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고 따듯한 마음은 냉정한 현실에 잠시 식을지언정, 꺼지지 않았습니다.
“강은 알고 있어.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도착하게 된다는 것을.”
-앨런 알렉산더 밀른_ <곰돌이 푸> 대사 중-
어른 마음, 동심(冬心): 겨울철과도 같이 쓸쓸하고 적막한 마음
흔히 20대부터 어른이라 말합니다. 마지막 학교 종이 치고 나면 학생들은 이제 교복이 아닌 어른스러움을 입고 사회에 나가게 됩니다. 어른이 된 이들은 동심은 잊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야 세상에 나갈 수 있고 또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계속 성장하며 화려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맞춰 사람들의 외면과 내면 또한 커져갈 것입니다. 하지만 화려해진 만큼 삭막해지는 것이 현대 사회이고 꾸며진 만큼 잃어버리는 것이 자신입니다. 세상은 어릴 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무너뜨리고 개인이 아닌 하나의 사회로 동화(同化)시키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세상을 지켜간다면, 그 세상이 동화(童話)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진 않겠지만 분명 이루고자 하는 과정에 원하는 답이 있을 겁니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걸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_<빨간 머리 앤> 대사 중-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은 동화는 환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어른이 되어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명 어른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는 소설의 한 문장처럼*,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는 각자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동화를 꿈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화는 동화같은 삶을 꿈꾸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어느 날 막연한 길 앞에 주저앉아 있을 때 동화 속 한 마디가 따스함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_<위대한 개츠비> 첫 문장)
“인생은 가장 캄캄한 곳에 선물을 숨기기도 하네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_<빨간 머리 앤> 대사 중-
오늘 하루가 누구보다 어두울지 몰라도 어둠 속에 혹은 그 끝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석같은 존재가 있을 겁니다. 보지 않았거나 보지 못했던 반짝이는 존재.
동화가 환상이라고 말하는 어른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동화는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놓친 아름다운 면이라고. 빠르게 달릴 땐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천천히 걸을 땐 보이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것이 동화라고 말입니다. 동화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길,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번지길 바라봅니다. 동심이 지친 마음에 따듯한 위로가 된다면 동화가 필요한 사람은, 차갑게 얼어버린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동화와 만화가 마음을 울린 적이 있다면 이야기가 아름답기 때문일까요, 현실이 벅차기 때문일까요? 동화와 만화는 이미 세상을 충분히 경험해 본 어른들이 쓴 이야기입니다.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은 욕망과 이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어둡게 물들이는 모습을 보며 필요한 건 성숙함이 아닌 어릴 적 맑고 순수한 생각임을 느낍니다. 흐려진 어른들의 마음에 <어린 왕자>의 때 묻지 않은 말들은 깊게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의 고정된 시선과 달리 아이들만의 순수하고 엉뚱한 시선이 잘 담겨있는 동화입니다. 어른들의 욕심, 모순적인 태도와 대비되는 어린 왕자의 말과 태도는 반성과 미소를 보여줍니다. 어른스럽게 사는 것이 늘 정답은 아니며 덜 성장해 보이는 마음이 더 단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율배반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비꼬면서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어른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지 말입니다.
만화 중에서는 디즈니가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디즈니 영화 중에서 <겨울 왕국>을 예로 들자면 <겨울 왕국1>과 <겨울 왕국2> 모두 주인공 엘사를 중심으로 진정한 자신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시즌 1에서는 도망치며 자신을 노래하지만, 시즌 2에서는 주체적으로 미지의 목소리를 따라갑니다. 두려움도 잠시 미지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데, 이때 노래가 ‘show yourself’입니다. 엘사는 두려움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때 “Show yourself”에서 ‘yourself’는 미지의 세계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 속에서 마주한 우리 자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Show yourself”
어른과 아이를 떠나 진짜 자기 모습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아이들에겐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겠지만 어른들에게는 묵직한 감정을 남겨 놓습니다. 동화는 삶을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아름답게 삶을 그리는 방법을 들려줄 뿐입니다.
동화가 되다.
성숙함은 세상을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듭니다. 어른의 세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도 세상의 흐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어른스러움 덕분입니다. 우리는 이를 ‘성공’이라는 단어로 부릅니다. 성공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미래를 정확하게 보는 자에게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공보다 중요한 건 성장입니다. 어린 시절의 마음을 잊고 나아가는 성공보다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성장을 바랍니다.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동심이라는 동화가 허황된 이야기 같아서 ‘픽’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시점은 관점을 바꾸기도 합니다.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란 굉장히 멋지고 놀랍고 신나는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그런 날들인 것 같아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_<빨간 머리 앤> 대사 중-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_<어린 왕자> 대사 중-
일상에는 작은 기쁨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놓치고 있는 평범한 행복들을 발견해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다시 보여주세요. 동심은 아이 같은 마음이지만 분명 어린이들의 것만은 아닙니다. 잃어버린 마음이 아니기에 다시 꺼낼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힐링이 되는 만화 한 편을 틀어 놓는 것처럼요.
동화 같은 현실은 없다고 하지만 동화 같은 세상은 사실 특별하지 않습니다.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있는 날,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시작되는 날, 타인에게 상처를 받고 또 위로 받는 날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도 시작됩니다. 어른이 되지 못 한 사람에게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동화가 시작되길 바라며 하나의 동심을 마무리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