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은 이렇다더라’. 88만 원 세대부터 헬조선 담론, MZ세대부터 이대남 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미디어와 정치권은 언제나 청년세대를 둘러싼 이런저런 ‘세대론’ 담론을 형성해 왔다. 세대론이란 ‘동일한 생물학적 나이대에 있으니 삶과 사회에 대해 비슷한 인식과 지향을 가질 것’이라는 일반론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대론적 논의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반화된 세대론’이 오늘날 청년세대를 이해하는데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공부방 계급론
2021년 KBS 시사기획 ‘창’은 ‘공부방 계급론’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만 18~34세 청년들에게 개인의 노력과 무관한 청소년기 공부 환경에 대한 질문 6개를 던졌다. 학창 시절 공부하는 방이 따로 있었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응답자를 ‘공부방 상/중/하 층’으로 분류했다. 그렇게 분류된 청년들에게 동일한 질문들을 던졌다.
질문에 대한 상층과 하층의 답은 극명하게 갈렸다. “내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문장에 상층 청년들은 61%가 동의한 반면 하층 청년들은 37%만이 긍정했다. “내 미래가 기대된다”라는 질문에 상층 청년들의 73%가 동의했지만 하층 청년들은 58%가 “기대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는 동일한 세대라도 어떤 성장 환경을 거쳤는지에 따라 삶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4세 청년층 응답자 가운데 ‘시장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체제가 가장 공정하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에 대한 동의율은 해외대학에서 4년제 대학, 2년제 대학으로 갈수록 낮아졌다.
‘시험이 사람의 실력과 자격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묻는 질문에 관해서도 비슷한 분포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들은 우리가 ‘세대론 그리고 이와 연결된 공정 담론’을 보다 세부적으로 뜯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요즘 청년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보다 경쟁 지향적이며 능력주의 담론에 매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몇 년간 공정 관련 이슈에 있어 할당제를 비롯한 형식적 평등을 지향하는 제도에 반대하고 시험 경쟁 절차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청년 목소리가 대서특필되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오늘날 전체 청년세대 집단이 다른 세대보다 더 경쟁 지향적이라 할 수 있을까?
실제 통계들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일례로 동그라미재단이 2016년에 수행한 대규모 인식조사 결과에서 “개인의 선택 노력의 차이로 인한 결과의 불평등은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 응답자 비율이 19~29세가 62%로 가장 낮았고, 40대와 50대가 67%로 2030 세대보다 높았다.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결과 불평등’을 꼽은 20대 응답자 비율이 노인층 응답자 비율보다 높았다. 비교적 최근인 2021년 10월 문화일보-엠브레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는 의견에 대해 50대는 49.8%가 동의한 데 반해, 20대는 63%나 ‘그렇다’고 답했다.
기울어진 공론장
그렇다면 왜 이런 세대론이 하나의 편견으로서 공론장을 뒤덮고 있는가? 이는 우리 공론장이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론장에서 발언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일례로 협상 테이블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는 같을 수 없다. 보다 큰 교섭권과 영향력을 갖추고 조직화된 집단의 마이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청년세대에서도 ‘공부방 하층’에 해당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상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반영된다. 청년 노동자 A 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건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갈려 나가는 하청 노동자인데, 이들의 목소리는 뻔한 추모와 회의의 대상이 될 뿐이다. 우리의 목소리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무겁게 듣지 않고, 우리들 스스로도 문제의식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언론 매체 및 커뮤니티를 통하여 서울권 4년제 대학에 재학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마주하는 데는 익숙하다. 대학생 집단은 커뮤니티 등을 통하여 여론을 만드는데 유연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경과 학벌이라는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론을 생산하고 주도하는 이들 또한 주로 이런 <서울권 4년제 대학 중산층 이상>에서 배출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바깥 세계를 이해하고 조망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론장의 축이 ‘공부방 상층’에 더 가까이 있음으로 인하여, ‘공부방 하층’에 해당하는 청년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주변화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작동하는 세대론은 청년세대의 다양성을 다루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주로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소비된다. 대표적 예가 바로 ‘MZ세대론’이다. ‘MZ세대’는 ‘80년대 초반~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를 의미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인 Z세대를 합친 개념이다. 이 용어는 2019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2021년을 기준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구글 빅데이터 기준으로 그 구체적 시점을 특정하면 ’ 2021년 4.7 재·보궐 선거‘ 직후로 분석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정치적 맥락에서 확산된 MZ세대론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청년들의 사회적 문제의식과는 무관한 상업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MZ세대’를 다룬 총 1만 3175건의 기사 가운데 ‘알바’, ‘실업’, ‘비정규직’ 등 정치·사회 키워드가 함께 언급된 보도량은 불과 142건(약 1%)에 불과했다.
합의로서 공정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에 대해 얘기했다. 동일한 현재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인식 속에 살아간다는 개념이다. 한 시대에도 다른 경험을 거친 여러 세대가 병존한다는 설명인데 이는 동일한 세대 내부에도 적용된다. 성별, 지역, 소득 등에 따라 개별 청년들이 마주하는 세계는 그 머릿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물론 공통된 의제에 대해 다수가 비슷한 지향을 띨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을 두고 집단 내부의 다양성을 뭉뚱그려 ‘MZ세대론’이나 ‘보수화된 이대남’ 같은 일반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세대론적 일반화는 특정 여론의 과잉 대표나 사회적 편견을 빚을 여지가 크다.
세대와 공정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두 가지 층위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구조적 접근이다. 한국 사회가 거친 발전 경로를 고려하며 그것이 오늘날 초래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다. 경제적 양극화, 지방 소멸, 연금 문제 등이 그 예이다. 두 번째는 당사자성에 대한 고려다. 동일한 문제에 관해서도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느끼고 강조하고 싶은 요인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구조적 요인’과 ‘당사자성’이라는 두 가지 층위를 고려했을 때, ‘공정이란 정해진 답을 찍어내는 도덕 시험지가 아니다. ‘공정’은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대화하고 타협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합의의 과정이다.
그간 한국 사회는 청년세대를 둘러싼 각종 공정 문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해결하는데 미진했다. 대신 저마다 당위론과 진영논리에 근거해서 정해진 답안을 강요하며 갈등하기 바빴다. 그 과정에서 공부방 하층에 해당하는 청년 노동자들은 소외되어 왔다. 만약 세대론이 실재하고 공정에 관한 명확한 답을 애써 제시해야 한다면, 나는 청년들까지 포함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대화’가 우리 세대의 공정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