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무겁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라는 존재는 나 자신 혹은 주변인에게 다가와 우리를 공허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해당 기사를 취재하면서 여러 형태의 죽음을 접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때가 된다면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마주하고 싶다. 지금부터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죽음을 미리 선택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제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연명의료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라고 판단되는 환자에게 시행된다. 이 경우 환자들은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받게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겪게 될 임종 단계를 가정하여 연명의료에 관한 자신의 의향을 미리 밝혀 두는 문서이다.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하면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에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문서는 향후 본인의 의식이 없어졌을 때,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확인해줄 수 있다. 이렇게 확인된 의견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이뤄지면 환자의 삶이 마무리된다.
*사망하기 바로 전에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과정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도입된 이유
첫 번째 이유는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생명 의료 윤리의 원칙을 보면 자율성 존중의 조항이 존재한다. 이는 ‘환자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생명 의료 윤리에 중요하게 적용된다. 이런 원칙에 따라 환자는 연명의료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환자와 환자 가족이 느끼는 고통 때문이다. 의식이 없는 환자와 이를 둘러싼 환자 가족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희망을 족쇄 삼아 계속되는 연명의료로 인해 가족들의 절망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이 눈더미처럼 커진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반대하는 목소리
간혹 식물인간 상태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소생한 케이스가 있다.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동안 발전된 의학 기술로 인해 의식이 회복하는 경우도 있고, 자발적으로 의식이 돌아와 기적적으로 회복한 케이스도 존재한다. 수치로 표현하기도 힘든 숫자이지만, 회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것이기에 연명의료 중단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선택할 때 가족이나 주변인의 개입이 있을 수 있다. 또한 환자는 더 살고 싶지만, 경제적 어려움이나 주변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내몰린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선택한 것을 두고 순수한 자발성으로 봐야 하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다.
연명의료 사례
서울대학교 병원 내과 의사가 만든 영상을 통해 연명의료에 대한 사례를 접했다. 사례에 나오는 환자는 40대 여성으로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서 심장 기능이 정상인의 20퍼센트 수준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심정지 상황이 왔고 병원에서 조치한 심폐소생술로 인해 호흡과 맥박이 돌아왔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특히 부정맥이 해결되지 않아서 의료진은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했다. 심할 때는 심장 전기충격을 하루에 150회 이상 시행하면서 환자의 몸이 점점 망가져 갔다. 반복된 전기 충격으로 화상도 심해지고 이로 인한 2차 감염이 계속되자 의료진은 연명의료 중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의료진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평소에 연명의료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수백 번이라도 제세동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없었고 가족들의 연명의료 중단 동의를 받지 못했기에 연명의료가 계속됐다. 그러던 중 환자는 어느 새벽에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임종을 맞이했다.
식물인간 상태 4년, 심장 전기 충격 치료 2달 동안 환자가 겪었을 고통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컸을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있었을 때 자신이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 미리 알았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을지 모른다. 환자가 겪을 고통의 크기를 알지만, 쉽사리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리지 못한 가족의 마음도 이해된다. 평생 함께 살면서 추억을 만들어온 가족을 자신의 결정으로 죽게 만드는 상황은 연명의료를 쉽게 중단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의식이 없는 환자가 연명 의료에 대해 의견을 말한 적이 없는 가족의 경우에는 결정할 때 더욱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이런 갈등을 조기에 막을 수 있는 선택지(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하다.
*심장정지 등의 원인에 의해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을 받은 환자들이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경우이다.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글을 마무리하며
연명의료 결정법*이 도입된 지 3년 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국민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를 통해 죽음과 연명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 연명의료 관리기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2021년 9월 기준 104만 4,499건으로 100만 건을 넘어섰다. 이는 19세 인구 1,000명당 약 24명이 작성한 비율이라고 한다. 많은 국민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각종 매체와 실제 경험을 통해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이제 법제화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의 가치판단 영역으로 들어섰다. 생명은 인간 개인이 가진 것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므로 개인과 사회 간 가치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의료진과 가족이 가진 정보의 비대칭성은 연명의료 결정에 대해 더욱 어려움을 더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는 바로 환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독자들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또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아, 삶과 죽음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2016년 1월 국회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