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지난건대 다시읽기]
너, 내 가족이 돼라!
교지 전 편집위원 차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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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건대 다시읽기]는 『건대』의 지난 호 중 다시 읽어볼 만한 양질의 기사들을 선별해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2014년 초안 마련 이후 숱한 반대에 부딪혔던 '생활동반자법'이 지난 26일 최초로 발의되었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떠올린 이번 건빵레터는 2019년 겨울 118호의 <너, 내 가족이 돼라!>입니다. 원가족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더한 유대감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여태 법적 가족(소위 '정상가족')의 범주 밖에 있다는 이유로 현실적 어려움들을 겪어왔는데요. 기사가 소원하는 대로, 이번 발의가 인간의 연결 경로를 다양하게 보장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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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40대 이상의 미혼 여성은 어디로 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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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은 최근 출간된 유명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등장인물은 바로 40대 미혼 여성 둘, 김하나 카피라이터와 황선우 에디터. 둘은 6년 간 친구로 지내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매입하여 동거를 시작했다. 둘은 기분 좋은 밤이면 술을 마시며 사소한 이유로 웃고 다투고 화해한다. 내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하나 차이점은,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살 곳을 마련하고, 멀리 여행을 다니며 여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부러움. 40대 미혼 여성의 일상을 보며 들었던 마음은 놀랍게도 부러움이었다. 내가 아는 사회는 정상가족 가부장제에 편입하지 않은 노년의 미혼 여성이나 남성을 ‘노처녀’ 혹은 ‘노총각’으로 규정짓기 일쑤였다. 성격이 유별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어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결혼에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40대 미혼 여성은 자기들끼리 너무도 즐겁게 하하호호 살고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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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는 자신들을 ‘조립식 가족’이라 칭한다. 꼭 결혼과 같은 성애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을 꾸린, 즉 비성애적 관계의 동거인을 가족으로 두는 가구를 뜻한다.
‘1인가구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닐 정도로 현재 한국 사회의 1인 가족 비율은 꽤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결과에 따르면 꽤 오래 전인 2010년부터 1인 가구 수가 전통적인 가족 형태인 4인 가구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나아가 2045년이면 1인 가구 비중이 36.3%에 이르러 4인 가구 비율의 5배가 넘는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즉 일명 ‘정상가족’이라 칭해지는 4인가족 형태의 핵가족은 더 이상 다수를 차지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관계/가족 형태가 등장하는 이 시점에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기준은 여전히 정상가족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들을 위한 주택 공급 사업은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비성애2인의 관계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나아가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혈연 혹은 혼인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식 보호자가 될 수 없어 급한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위기에 처한다. 이렇듯 1인 가구들은 법률혼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의 담론이 확대되었던 2018년, 진선미 의원이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한다고 나섰다. ‘동반자등록법’은 성/혼인관계와 관련없이 성인 2인이 서로를 법적 동반자로 등록할 수 있는 법안인데, 국민청원에 올라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가족 구조에 대한 사회적 법률의 재정비는 과거 현 한국과 동일한 흐름을 겪었던 해외의 여러 국가에서도 거쳐왔던 수순이다.
*한정연, ‘전체 가구의 30% 나 혼자 산다’, 중앙일보, 2019. 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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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프랑스의 상황은 현재 한국과 비슷했다. 68혁명 이후 자유로운 결합을 추구하는 문화가 형성되자, 청년층을 중심으로 혼인율이 감소하고 사실혼과 비혼/동거율이 지속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시민결합제도인 시민연대협약 ‘PACS’를 법제화했다. ‘이성이나 동성인 성인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위해 맺는 계약’으로, PACS를 통해 가족이 되면 혼인 관계와 다를 바 없는 법적 권리와 의무를 인정받을 수 있다. PACS는 동성 결혼을 보완하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연인이 아닌 친밀한 관계의 결합까지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일본의 도쿄도 시부야구도 이과 같은 흐름을 따랐다. ‘파트너십 증명제도’라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구내 두 동성 간의 생활공동체를 법률상 혼인에 상응하는 파트너십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 증명제도 또한 PACS의 방식과 궤를 함께 한다. 법률상 혼인과는 구분되지만, 혼인 관계와 다르지 않을 정도의 실질적인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파트너십 증명제도는 후에 도쿄도 세타가야구,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미에현 이가시, 오키나와현 나하시, 지바시 등으로 확산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의 ‘동반자등록법’은 법으로 제정되지 못했다. 일부 세력(특히 종교계)이 동반자등록법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반대측의 이유를 살펴보면 주로 세가지다. 첫째, 동성애자가 늘어날 것이다. 둘째, 출산율이 더 떨어질 것이다. 셋째, 청년들이 더욱 가족을 구성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프랑스 정부가 PACS 등록자에 대한 통계자료 수집을 법으로 금하여 공식자료는 집계되어 있지 않지만,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의 비공식 자료에 의하면 PACS 등록자 중 동성커플 비율은 도입 직후인 2000년 45~50%에서 2004년 15~20%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2009년에는 5% 미만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09년 현재 PACS 등록 커플 중 95% 이상이 이성커플이라는 의미다.* 나아가 혼인가구와 동거가구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제공함으로써 PACS 커플의 출산, 즉 혼외 출산이 법적 자장 안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어 전체적인 출산율이 증가하였다. '혼인' 외의 또 다른 가족구성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동반자등록법’과 같은 파트너 제도는 오히려 가족장려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이유로 개인주의의 확산을 꼽지만, 국민 권익 위원회에서 발표한 1인 가구 증가원인에 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청년층이 생각하는 1인 가구 증가 원인의 26.5%는 고용불안과 경제여건의 악화였다. 특히 경제여건 악화는 청년층이 생각하는 1인 가구 원인의 44.2%를 차지할 정도로 체감도가 높았다.** 즉 청년층의 개인주의적 성향 뿐만 아니라 경제적 빈곤, 주택난과 같은 복잡한 사회적 원인들이 청년층 1인 가구 증가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타의적으로 혼자가 된 1인 가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바로 ‘쉽게 가족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동반자등록법과 같은 파트너쉽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동반자등록법이 합법화되고 조립식 가족이 혼인관계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다면, 청년들로 하여금 ‘혼인’ 외의 또 다른 가족구성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비혼 동거 커플의 증가와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2016
**장준석, ‘청년 1인 가구,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서울대 저널, 2019. 10.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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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 형성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요즘이다. 비혼, 동거, 동성결혼 논의, 장애인의 탈시설 이슈까지. 이러한 담론의 장들이 ‘동반자등록법’이라는 새로운 법제화를 요구하게 하였으며, 나아가 ‘가족의 정상성’ 자체가 모든 인간의 생애에 당연히 획득되어야 할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라는 의식에 이바지했다.
한국사회의 특징이자 난점은 가족의 정상성이 너무도 견고하다는 것이다. 그 정상성은 집단화된 가족주의와 이성애 규범, 그리고 자녀 재생산 중심의 미래주의로 특정된다. 즉 재생산의 안정된 단위로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가족의 핵심적인 역할이었던 것. 가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가가 가족 단위로 부양자/피부양자의 의무를 부여하고, 가족 단위로 집을 장만해주거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에는 정상가족과 시민권이 교환되는 게 보통이었으나,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증가하자 현 시대 사람들은 가족 형태에 기반하여 교환되는 시민권이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게 되었다.
사회의 축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따른다. 혼인에 대한 의무감이 점차 사라져가는 최근, 가족을 매개로 삶의 생애-안정성을 상상해왔던 여러 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노력이 불거지는 것 또한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재구성되고 있는 현재, 인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다양한 친밀한 관계성을 맺는지 주목하고, 그 욕망을 사회적 제도로 편입시켜 가족 질서를 재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닐까.
법적으로 승인되지 않았을 뿐, 한국 사회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이들을 정상가족이 아닌 ‘위기가족’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는 위기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국가는 특정 가족 형태를 위기로 치부했다. 그러나 ‘위기’라는 것 자체를 문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애를 헤쳐가며 어떤 위기를 경험하고 성장한다. 위기란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이며 유동적인 가치다. 모든 가족은 위기에 처할 수 있으며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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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로 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한다. 애인과의 동거는 부적절하다고도 한다.
어떤 편견은 들여다보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막상 40대 미혼 여성을 들여다보면 경제적 만족과 우정관계로 점철된 삶을 영위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황선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인간의 습성 중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타인에게 어느 정도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러 가족 형태가 국가의 승인을 받는 과정 물론 중요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가의 승인 이전에 개인이 친밀성을 만들어 나가는 실천의 양상에 주목해보고 싶다. 그 실천에서 바로 공동체가 더욱 다정하게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지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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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낯선 누군가를 나의 삶 안으로 끌어들여 ‘연결’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연결의 욕망’을 무시하고 혼인이라는 단 한 가지의 형태로 인간의 연결방식을 규정해버리는 것은 우리를 더욱 소외시키는 일 아닐까. 우리는 특정 가족에 대한 편견 없이 다양한 선택권 안에서 가족을 선택하고 만들 수 있는 가족구성권을 보다 활발하게 요구하고 또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다양한 연결경로가 사회적으로 보장되기를 바라는 욕망은 사회의 따뜻함을 보다 길게 지속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언젠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겨워질 때, 나는 당장 내 옆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너, 내 가족이 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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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주소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120 제1 학생회관 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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