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지금’과 ‘여기’의 한국문학을 읽어내는 흐름
: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부편집장 유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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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건빵레터 구독자 여러분! 오늘의 레터는 <‘지금’과 ‘여기’의 한국문학을 읽어내는 흐름: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입니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젊은작가상은, 데뷔 십 년 이하 작가들의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상입니다. ‘우리 사회의 경향과 징후를 기록하는 매체로서의 문학이 지니는 영향력’을 알리고, 모으고자 만들어졌는데요. 동시에 ‘기존의 문학 문법을 얼마만큼 경신하거나 답보’하는지를 살피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 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편혜영, 황정은, 박솔뫼, 이장욱, 최은영, 김금희, 정용준, 강화길, 박상영, 김초엽, 서이제 등 현재 한국 문단에 앞장서고 있는 문학인들이 있습니다. 젊은작가상은 그야말로 ‘지금’과 ‘여기’의 부글거리는 에너지로 가득한 한국문학을 읽어내는 흐름과 다름없는 것이죠.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은 김멜라 「제 꿈 꾸세요」, 성혜령 「버섯 농장」,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대상작),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정선임 「요카타」,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인데요. 이 중 제가 가장 신나게 읽었던 네 개의 작품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작품과 작가 노트, 해설의 평론이 연달아 수록되어 있어 해석의 깊이를 더해가는 재미도 있답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젊은작가상에 대한 설명과 풀이는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329p 심사 경위를 참고하였습니다. 이하 작품 속 문장 발췌도 동일한 책에서 가져온 경우 책 제목을 생략하고 인용 마크와 면 수만 표기하였음을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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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버릇처럼 말끝마다 ‘요카타’라는 말을 덧붙이는 서연화는 100세가 된 기념으로 여러 방송 매체, 지자체, 동네 주민들로부터 주목받고 라디오 인터뷰까지 하게 됩니다. 사실 서연화는 100세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네 살 터울의 언니가 태어나자마자 죽었지만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4년 후 태어난 동생에게 호적을 그대로 덮어씌웁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96세인 것이죠. 호적 상의 나이(언니의 나이)와 실제 나이 사이에 격차가 있어 역사적 사건과 자신이 그 시점에서 몇 살이었는지를 쉬이 떠올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이제야 한글을 배우고 있을 만큼, 오랜 시간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가지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일본인 남편과 강제로 결혼하여 어디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었나요.
자신의 것이라고는 평생 가져보지 못한 주변부 여성의 목소리는 100세라는 상징성을 통해 난생처음 주목받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죠. 서연화는 인터뷰 답변을 준비하며 ‘삶에서 불편한 부분을 걷어내고 보기 좋은 부분만 남도록 다듬어 들려’줍니다. 하여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도 터 내리지 못하고 이번 생에서의 만남이 끝난 이들을 떠올리며 그 세월을 내적으로 갈무리합니다.
“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다라는 말보다 더 다행같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222p)
요카타는 ‘다행이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입니다. 서연화에게는 이 단어가 곧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는 자기 암시의 언어인 셈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비틀린 시간과, 제대로 된 장소에 있지 못하다는 감각을 조금씩 기워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삶이죠. 살아서 자꾸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단어 한 마디든, 몸짓이든 발신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라디오 인터뷰의 꾸며낸 대답과, 서연화의 실제 기억–간신히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았고, 전쟁으로 인해 남편과 아이를 잃고 혼자 남은-을 교차하여 서술합니다. 그래서 「요카타」를 읽는 우리는 서연화의 역사를 오롯이 수신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말하고, 드러내고, 기록하는 2023년의 문학에게 새로이 부여된 역할을 담담하게 수행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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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개장이 있습니다. 사 대에 걸쳐 모계로 상속된 집안의 가보인데, 마치 ‘어디로든 문’처럼 가고 싶은 장소를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비록 편도라는 한계가 있으나 ‘자개장을 쓸 땐 갈 곳에서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먼저 가늠해야’ 한다는 주의사항만 잘 지킨다면 이토록 편리하고 유용한 이동 수단이 또 있을까요? 「자개장의 용도」는 ‘나’가 대학에 입학하며 기간한정으로 대여받은 자개장을 이용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복작복작하고 미숙한 신입생들 사이에서 ‘정우’와 친밀한 사이가 되지만, 그에게 어떤 실수를 하고 맙니다. 학교에서 ‘정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나’는 ‘정우’와 함께 걸은 모든 곳으로 갑니다. 자개장을 이용해서요.
사실 이 자개장은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제대로 쓸 수 없는 물건입니다. 돌아갈 거리를 재지 않고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떠난 엄마처럼,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죠. 이 작품은 전형적인 ‘여로형 구조’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머물러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여행하며 방황하고, 갈등하고, 끝내 출발지에 돌아왔을 때는 여정의 과정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여로형 소설에서는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인물에게 중요한 의미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때는 떠나기 전의 자신과 사뭇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인물들은 모두 실수를 저지르겠지만, 괜찮습니다. 사실 자개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디로든 자신에게 필요한 무엇을 찾으러 갈 수 있으니까요.
“그 순간 나는 내가 아주 먼 곳으로 가게 되리란 사실을 알았다. 가장 먼 길로 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자개장 앞에 설 것이란 사실도. 그때까지 편지는 자개장 속에 놓여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움직이지 않고 제 몸 위로 먼지를 쌓으면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자개장이 그들을 붙들 테니까. 무언가 떠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 자개장에는 그런 용도도 있다.” (275p)
그래서 자개장의 용도는 두 가지입니다. 떠날 수 있게 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 자개장을 통해 거리낌 없이 이곳저곳을 누비고, 때로는 돌아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아주 멀리로 와버렸더라도, 내가 여기까지 오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곳으로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떠나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언제든 돌아갈 장소가 있다는 사실도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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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은 이 시대를 가장 예민하게 감각하는 젊은 작가들이 그 대상인만큼 사회를 진단하는 성격의 작품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대와 젠더, 역사와 재현, 노동과 사회,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331p) 젊은작가상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문학을 통해 ‘지금-여기’를 제대로, 새롭게 보기 위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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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마지막 레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시험 기간, 여름방학 동안 건빵레터는 잠시 쉬어갑니다.
다음 학기에 다시 만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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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주소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120 제1 학생회관 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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