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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흥행하는 요즘입니다.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겠어요?>, 드라마 ‘DP’의 대사를 소환하는 이번 건빵레터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기인하는 병영 내 부조리를 짚어냅니다. 무겁고 불편한,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다루는 이번 레터에 주목해 주세요.
작년 새해에 입대해서 올해 한여름에 전역했다. 연천의 남방한계선 인근 부대에서 복무했다. 반평생을 따뜻한 부산에서 보낸 나에게 연천은 무척 추운 곳이었다. 내 주특기는 81MM 박격포이다. 도수 운반할 수 있는 화기 중 가장 무거운 무게라 하여 그 보직은 흔히 보병들의 무덤이라 불린다. 그래서 그런지 전역 이후에도 무릎이 시큰거릴 때가 있다. 군 생활을 ‘군캉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대는 운이 좋았다.
최근 들어 ‘DP’와 ‘신병’ 같은 군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흥행하고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때의 이야기가 회상될 때마다 트라우마에 빠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군대는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병영 내 부조리의 원인은 이러한 사회에서 기인한다. 폭언, 욕설, 구타는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이어져 온 대표적인 부조리이다. 부대에 군사경찰이 들이닥쳐 부조리를 수사하는 일은 예삿일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이 사회에 알려지면, 많은 이들이 가해자에 대한 응징을 원한다. 그러나 유사한 사건이 지속하여 발생한다면, 각 사건을 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유사한 여러 사건 속에서, 한 사건만을 바라보며, 가해자만을 응징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을 한 20대 남성이 처벌받는 모습을 보며 씁쓸했던 적이 있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한 부조리는 군 복무를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로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 20대 남성은 군 복무를 원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군 복무는 의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부조리를 한 20대 남성을 응징하고 싶다면,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젊음을 구속하며, 노동을 강요하고, 때로는 생명을 담보하는 훈련과 작전까지 강제하는 사회도 응징해야 한다.
최근에는 인구 감소로 병력 자원이 감소하면서 기존의 현역 부적합 판정에 가까운 20대 남성들이 입대하고 있다.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는 이에 침묵하고 있다. 정치권과 인권신장·양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시민단체는 선거가 지나면 이에 대한 적극적 논의를 펼치지 않는다. 그들의 입대 속에서도 ‘모병제’나 ‘여성 징병제’와 같은 대안은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20대 남성의 희생을 통해 안전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의 군대에서는 매년 1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고단하고 무료한 복무기간을 이겨낸 힘은 어이없게도 육군 복무 신조였다.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날씨가 춥든 덥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석·크리스마스·새해 첫날·설을 가리지 않고 모두 경계 작전에 투입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결과일 지도 모르겠다.
군 복무가 끝나갈 병장 때쯤, 우리 학교 후배가 소대 이등병으로 전입해 왔다. 그에게 펼쳐질 일을 바라보며 함께 한숨을 쉬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20대 남성은 지금도 전방을 주시하며 경계 작전에 투입하고 있다. 드라마 ‘DP’의 한 대사,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겠어요?”는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무겁고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