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옷을 고르기 어려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더운 데다 비가 잦은 여름, 잠시 들렀다 가는 듯한 가을, 성큼 다가오는 겨울까지. 사계의 구분은 희미해지고 있고, 이상기후 현상은 익숙해질까 두려울 정도로 각지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최근 '기후+OO'의 형태로 달리 명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번 레터 <기후+OO>은 923 기후정의행진의 기억과 함께 '기후' 뒤에 따라붙는 여러 단어를 살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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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우울증, 기후불평등, 기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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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새 ‘기후’ 뒤에는 여러 단어가 따라붙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다소 낯설었던 표현들도, 들춰보니 이전부터 이어져 온 기후 의제다. 어떤 표현이든 결국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작은 기후변화다. 해마다 뜨거워지는 여름, 때에 맞지 않게 퍼붓는 비, 잦아진 산불 등의 이상기후만으로도 체감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서술은 뒤로하고, 기후에는 어쩌다 ‘위기’와 ‘불평등’이 붙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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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용어 정리를 하고 시작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후위기’. 기후위기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기후우울증’.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가 국가 간, 사회 계층 간 불평등과 얽혀있음을 밝히는 ‘기후불평등’. 이렇듯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기후 변화의 원인과 영향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줄이기 위한 운동을 의미하는 ‘기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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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대로 이상기후가 위기 수준에 도달하면서,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기 위해 기후위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 원인과 피해 양상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기후위기가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님이 밝혀졌다. 같은 땅 위에서 누군가는 더 큰 피해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i)로 주거취약계층, 개발도상국, 노년층과 미래 세대, 그리고 비인간 동물들의 피해가 있다. 한여름 쪽방촌의 표면 온도는 신축 아파트의 30도 가까이 높다고 한다.ii) 장마철이면 반지하의 침수 피해 소식이 들려온다.1)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 비해 기후위기 적응2)력이 낮아 이상기후 피해로 사망할 확률이 15배 높다.3) 우리에 갇힌 채 살아가는 가축들은 폭우와 폭염에 대거 폐사한다.iii)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 있으나 그로 한 피해는 지구촌 약자들이 받는 현실이다.4)iv) 이렇듯 기후위기 피해 사례 안에는 불평등 구조가 자리한다. 기후불평등과 기후정의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1) “지난해 8월 8~9일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의 반지하주택이 침수돼 모녀 등 일가족 3명과 동작구에 살던 기초생활수급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염, 폭우, 가뭄 등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변으로 모습을 보이는 기후위기와 심화된 주거불평등이 약자들을 먼저 덮치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재난이다.”
신승민 기자, 《세이프타임즈》, “윤석열 정부 ‘반지하 참사 1년’ 기후재난 대책이 없다”, 2023.07.27., http://www.saf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534
2) 기후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피해와 자연재해에 대한 적응역량과 회복력을 높이는 등 현재 나타나고 있거나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위기의 파급효과와 영향을 최소화하거나 유익한 기회로 촉진하는 모든 활동.
3) “지구의 복수는 가난한 대륙부터 덮쳤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8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취약 지역에서 가뭄·폭염·홍수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15배 높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지구촌 약자에게 먼저 도달한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가 공식화한 것이다.”
편광현 기자‧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지구의 복수’ 기후변화로 인한 죽음, 가난한 대륙이 15배 많다”, 2022.02.2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1871#home
4) “1990년에서 2015년 동안 부유한 10% 사람이 전 세계 배출량의 약 52%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 사람은 인구 50%의 가난한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많이 배출했다. 지난 25년 동안 배출량은 60% 증가했는데, 상위 1% 부유층이 인구 50%의 빈곤층보다 3배 더 컸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한겨레》, “가난하거나 어리거나…기후위기와 불평등은 얽혀 있다”, 2022.02.20.,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317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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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기후OO'은 유의어 놀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맥락 내에서 자꾸만 새로운 단어를 제시하는 건, 조금 더 자세히 말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생동하는 지구가 꺼져가고 있음을 구체적인 현실로 인식하려는 시도. 이 재난에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낯설게 하고, 가시권으로 부지런히 들여놓으려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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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글 또한 하고 또 한 말의 반복처럼 읽힐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 전역이 데드존(Dead Zone)5)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말과 인식을 부지런히 갈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와 실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5)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산소 문제와 관련된 용어인 데드존(Dead Zone)을 차용했다. 데드존은 물속에 산소가 완전히 고갈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한 바다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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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은 그러한 목소리가 한데 모인 가시화의 현장이었다. 기후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연대의 힘을 고양하는 기후정의행진은 2019년부터 매해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만여 명의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깃발과 문구를 들고 모였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 분노, 무력감까지도 공유했다.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는 공동 구호 아래 한마음으로 변화를 외치고, 노래와 율동을 하고, 계속해서 걸었다. 923의 외침처럼, 우리 모두가 발 붙이고 있는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약자에게로 향하는 기후위기 피해를 하루라도 빨리 줄이기 위해 변화는 필요하다. 기후정의는 모두의 의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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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걸을수록 힘이 나서 더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923 기후정의행진의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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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사거리를 지나 세종대로로 향하는 길. 행진 막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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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로 인해 생명들이 멸종하는 상황을 상징‧경고하는 퍼포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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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주소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120 제1 학생회관 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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