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의,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건빵레터 발송일인 오늘은 건빵레터 구독자 여러분의 알바에 대해 여쭤보며 시작하려 합니다. 평소 어떤 경로로 알바를 구하시나요? 경험해 본 알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이번 건빵레터 <[당근알바] 광화문 한복판에서 5미터 '천공' 굴리기>의 필자는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 당근마켓에서 알바를 구하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서게 됩니다. 일용직 노동자로서 '천공'을 굴린 필자는 무엇을 느끼고 떠올렸을까요?
당근마켓에서 알바 일자리 구하기 기능을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텅 빈 통장을 채우기 위해 주말 행사 지원 인력을 구한다는 공고에 냉큼 지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문자가 왔고, 근무자들을 초대한 채팅방에서는 장소와 일시 등을 안내했습니다. 집회와 관련한 업무임을 사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습니다. 만약 돈을 받고서 시위대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면 꺼려졌기에, 혹시나 하며 마음을 졸이며 집결지로 향했습니다.
집결지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축 처진 진분홍색 비닐 천 조각이었습니다. 알바 업무는 바로 이 비닐 천에 공기를 주입해, 부풀어오르면 행진 대열과 함께 이 공을 굴리는 것이었습니다.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공에 공기를 주입하는 데에만 신경 썼습니다. 공이 절반쯤 부피를 채워갔을 때, 표면에 적힌 글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당정권, 양평 고속도로, 주가조작...’ 그렇습니다. 이 공의 이름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로 인해 논란이 불거진 천공스님의 이름을 딴 천‘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천공’을 광화문에서 굴리는 것이 ‘천공 굴리기’라는 행위 예술 작품이었던 것이고, 알바 인력은 이 공이 불의에 의해 터지지 않도록, 그리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밀고 당기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공은 충분히 팽팽해졌고, 사전 집회의 열기 역시 뜨거웠습니다. 당시 정권의 특정 역사 인물에 대한 천대에 분노한 많은 시민이 결집한 것 같았습니다. 경찰 역시 시위 ‘안전 및 질서 관리’를 위해 배치되었고, 이제 정말 공을 굴리기만 하는 시점이 되어 단단하게 팽창한 공에 손을 맞대었습니다. 공을 굴리려던 바로 그 순간…
경찰들이 공을 에워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공을 굴리고자 했던 일용직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제게 손을 대거나, 제재하려는 움직임은 없었으나 십여명의 경찰 장정이 모여들어 꿈적하지 않자, 공 굴리기는 소원해졌습니다. 한순간에 무력해진 상황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하루 돈을 벌러 온 사람이 아니라 시위대였다면, 처벌을 감수하면서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공을 밀어보고자 했을까? 그렇다면 이 공이 굴러보지 못한 건 나의 탓일까? 이 공을 왜 굴려서는 안 되며, 그 주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모든 질문은 공이 도로 위를 한 번 굴러야만 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장소를 옮겨 남대문 앞에서, 다시 한번 공 굴리기를 시도했습니다. 이동 중에 공의 바람을 다 빼고 다시 넣어야 했기에, 4시간 가량이 걸렸습니다. 밤이 되어 깜깜해지고, 비도 추적추적 올 때쯤 공은 다시 형태를 찾아갔습니다. 저녁의 재시도에서는 또 다른 제약 없이, 낮의 경찰의 저지가 무색할 만큼 공은 도로 위를 따라 잘 굴러갔습니다. 행진 대열은 환영했고, 길을 지나는 시민들도 직경 5미터 공의 등장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은 낮에도 맡겨만 줬다면 수월하게 굴러갈 수 있었다고 자랑하는 듯했습니다. 낮의 경찰의 선택이 마냥 잘못되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이 굴러가도 되는지의 여부는 진정 공을 굴려야만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공 굴리기를 원천적으로 막은 조치는 시민들의 실망만 키운 셈이었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천공이 광화문을 굴러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천공 굴리기’ 작품의 수신자인 윤 대통령은 이를 알고 있을까요? 부산 엑스포를 명목으로 소통과 민생을 소홀히 하면서, 해외 순방에만 전념하던 윤 대통령의 노력이 안타깝게도 유치는 무산되었습니다. 최측근에서 끊임없이 위중한 의혹이 불거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분명한 사실은 이제 ‘천공’을 직면하고 답할 시간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