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어떤 웃음을 택할 것인가
편집위원 백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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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의 오리지널 시리즈 SNL 코리아 시즌6는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와 드라마 '정년이', 뉴진스 하니 패러디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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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시즌6’에서 배우 김아영이 소설가 한강을 패러디하는 장면. [쿠팡플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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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해 국격을 높인 한강 작가의 말투와 외형을 웃음거리 삼았다는 점에서 재밌기보다는 불쾌했고, 풍자의 허용 범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천재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 '정년이'에서 특정 단어만 바꾸어 외설적 캐릭터 '젖년이'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미성년자인 정년이를 성적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과, 아직 종영되지 않은 드라마의 작품성을 해칠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국정감사에 나선 하니의 외국인 특유의 어눌한 발음을 따라하고, 하니의 사인을 두고 '예쁘다'고 말하며 여자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강조한 것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출석한 외국인 노동자 하니의 진정성과 사태의 심각성을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코미디의 자유를 제한하면 안 된다며 정작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별걸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는 등 pc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논란의 범위가 확장되기도 했다.
풍자는 예로부터 소설과 희곡 등에서 현실의 부정적 요소를 유희를 통해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과연 모든 풍자가 적절하고, 풍자의 대상이 된 모든 사람은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SNL 코리아 시즌6에서 풍자와 조롱의 경계는 어디였으며, 우리는 이번 논란을 통해 어떤 지점을 고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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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자가 뭐길래
SNL 코리아 시즌6의 프로그램 소개란을 보면 '파격적인 웃음, 과감한 풍자로 대한민국 트렌드를 이끄는 쿠팡플레이 코미디 쇼'라고 나온다. 2011년 방영된 SNL 코리아1부터 쿠팡플레이에서 새로 시작해 현재까지 방영된 모든 프로그램 소개에 '풍자'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SNL 코리아 측에서도 풍자를 주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어사전에 풍자를 검색하면 첫째로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이라는 뜻이, 둘째로는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번 논란은 큰 범위에서 첫 번째 뜻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모두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을 비웃기보다는 인물의 특성을 따라하여 웃음거리 삼은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SNL 코리아가 많이 하는 ‘패러디’는 풍자의 기법의 하나로, 풍자의 첫 번째 뜻과 일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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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作 '벼 타작',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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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풍자의 공격 대상은 ‘위선’이었다. 특히 왕이나 귀족 등의 사회 지배계급들에 대한 폭로는 시대를 불문하고 대중의 공감을 받아왔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타작」을 보면 아무렇게나 펼쳐진 돗자리 위에서 곰방대를 물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양반과 그 앞에서 열심히 타작 일에 매진하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이 나온다. 김홍도는 이 작품을 통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대립을 보여 현실의 불공평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국민의 기본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신분제가 철폐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개선 요구 등의 지도층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사회 구조적 모순의 하나로써 남녀차별과 인종차별 또한 풍자의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1)
1) 김기태, 「풍자화 속 사회상이 비추는 개인의 욕망 풍자 연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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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 코리아가 그간 풍자의 요소로 삼은 것들을 살펴보자.
초창기 SNL 코리아는 전현직 대통령 및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등을 패러디한 ‘정치 풍자’부터 취업난 속 스펙 싸움과 경쟁,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사내 분위기를 꼬집은 ‘사무실 풍자’까지, 주로 시청자이자 기성세대에 억눌려온 젊은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풍자가 주를 이루었다. 2~3년 전부터는 드라마나 예능 속 특정 장면을 패러디하고, 복학생이나 대치동 학원가, 인턴기자 등 사회 전반의 일상적 요소를 패러디하는 개그를 선보였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는 일명 'MZ 오피스'라는 이름으로 2030 MZ세대의 개인주의와 사회 초년생의 미숙함이 담긴 직장생활을 풍자하고, 불륜 등산 동호회나 연애를 목적으로 러닝동호회에 가입하는 '동호회의 목적' 등 연령대를 제한하지 않고 TV나 OTT를 시청하는 이들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풍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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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훌륭한 풍자, 적절한 풍자
그렇다면 훌륭한 풍자, 적절한 풍자는 무엇일까.
2019년 12월 27일 독일 공영방송 '서부독일방송(WDR)'은 페이스북에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 영상을 올렸다. 이는 일명 '할머니 게이트'라 불리며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다음은 논란이 된 가사의 일부다.
“내 할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닭장으로 가지. 오토바이~ 오토바이~. 매달 고급 휘발유 1,000리터를 쓰지. 내 할머니는 늙은 환경돼지!”
“내 할머니는 매일 커틀렛을 굽지. 커틀렛~ 커틀렛~. 할인매장 고기는 정말 싸기 때문이라고. 내 할머니는 늙은 환경돼지!”
“내 할머니는 더 이상 비행기를 타지 않지. 그렇게 깨끗한 척~ 깨끗한 척~. 대신 그녀는 지금 매년 10번은 유람선을 타지. 내 할머니는 그래 환경돼지가 아니야.”
영상은 한 아이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유엔 연설 “우리는 여러분이 이 책임을 피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We will not let you get away with this).”를 말하며 끝이 난다. 영상은 그간 독일 사회에서 주요 이슈로 부상한 환경 보호 담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풍자한 것이 분명했다. 이 영상은 환경 이슈를 세대 간 갈등으로 확장했다는 점과, 이를 풍자하기 위해 아이들을 도구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일자 영상을 올린 서독일방송과 어린이 합창단 측에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사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방송사 앞에서는 규탄시위가 벌어졌고, 관할 경찰서에는 200여 건이 넘는 고발장이 접수되기도 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는 '풍자의 위기'를 논하며 표현과 풍자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고 반발하는 등 가사 내용과 방송사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풍자의 자유와 그 대상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재조명되었다.2)
2) 이유진, 「독일 풍자인가 노인혐오인가…공영방송의 ‘할머니 게이트’ 논란.」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당신은 위의 노래 가사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가사에 나오는 ‘할머니’가 환경문제를 풍자하기 위해 사용된 단순 소잿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본인과 가족의 생계에만 관심이 있고, 환경을 비롯한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무지한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는가? 혹은 그와 반대인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는가? 분명한 것은 이 영상으로 인해 어떤 노인도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인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상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풍자의 대상으로 노인을 선택한 것은 분명 적절치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풍자의 자유와 그 대상의 경계는 어디까지인 걸까? 부자나 대통령을 대상으로 하는 풍자는 다 함께 웃어넘기면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풍자에는 그렇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인문교양잡지 ‘유레카’ 452호에서 훌륭한 풍자의 조건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는 현실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다는 목적을 잃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만만하고 편한 약자가 아닌 나쁜 강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신체나 외모, 장애를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개인의 사생활을 소재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과 남의 비극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훌륭한 풍자의 조건에 포함된다.3)
3) 정선학, 「유쾌한 배경지식_사회 풍자」, 유레카, (452), 82-87, 2021.
사람마다 생각하는 풍자의 조건이 다를 수 있고, 풍자에도 조건이 있냐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훌륭한 풍자 즉, 모두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풍자를 위해서는 위와 같은 조건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 게이트 사건은 풍자의 첫째 조건에는 부합했지만 둘째와 셋째 조건은 철저히 무시했다. 환경문제를 꼬집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는 분명했으나,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며, 늙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노인을 웃음거리 삼았기 때문이다. 약자나 약자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풍자는 더 이상 풍자가 아니며, 누구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웃어서는 안 되는 조롱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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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NL 코리아 시즌6의 풍자는 어디를 향했는가
그렇다면 SNL 코리아 시즌6의 이번 논란은 훌륭한 풍자의 어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지 살펴보자. 먼저 한강 작가가 수상소감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작가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와 느릿한 말투, 나른한 표정을 패러디한 것은 세 가지 조건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외형을 따라 하는 것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으며, 화제가 된 수상 사실을 개그 소재 삼는 것이 도대체 어떤 목적성을 띠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단순히 웃음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더더욱 비판받아야함이 마땅하다. 작가로서 30년의 삶을 증명하다시피 하는 고유한 외형을 웃음거리 삼는 것은 무례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강 작가를 패러디하는 것과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를 패러디하는 것이 뭐가 다르냐 묻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한 예능 방송에 출연했고, 유명세를 하나의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글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작은 잔치 하나 열지 않을 것을 부탁하는 한강 작가와 그들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음으로 드라마 ‘정년이’를 ‘젖년이’로 패러디한 것 또한 한강 작가와 같은 이유로 세 조건 모두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안영미의 젖년이 묘사를 보고 정이랑이 한 대사 “출산 정책에 가히 도움이 될 듯싶다.”가 저출산 해결 방안으로 ‘조이고 댄스’를 제안해 논란이 된 김용호 국민의힘 의원을 저격하는 내용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드라마 ‘정년이’에서 ‘젖년이’로, 이후 출산 정책까지 맥락의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의도가 명확하지 않아 해석이 분분한 풍자는 잘 된 풍자라고 볼 수 없다. 정확히는 이를 풍자로 볼 수도 없을뿐더러, SNL 측에서 의도한 것 또한 풍자가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문제는 SNL이 그동안 제공한 콘텐츠는 가벼운 장면일지라도 사회적으로 고민할 거리가 있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이 SNL의 모든 콘텐츠를 풍자라는 개념 안에서 이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정년이 패러디의 경우에는 풍자의 타당성 문제에서 미성년자 성적 희화화 문제와 작품성 훼손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SNL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든 사람들은 이제 ‘정년이’를 들으면 ‘젖년이’가 떠오를 것이고, 이는 드라마 정년이를 접하는 시청자들에게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개그 요소를 심어 몰입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뉴진스 하니의 국정감사 장면을 패러디한 것 또한 훌륭한 풍자라고 볼 수 없다. 하니의 어눌한 발음을 웃음거리 삼고, 하니의 말이면 다 들어주어야 한다며 여자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국회의원을 연기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기 위해 홀로 법정에 나선 외국인 노동자’라는 본질과 그 엄중함을 경감시킨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음을 유도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희화화의 대상인 하니는 해당 사건에서 철저히 약자의 입장이었다. 이 사건 이후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한 강연에서 언급한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 전 대표는 "책에 나오는 악마가 사람들을 모두 희화화해서 세상 모든 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라고 한다. 중요한 얘기, 심각한 얘기도 그냥 웃겨! 세상은 이렇게 가볍고 단순한 거야."라고 줄거리를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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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떤 웃음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풍자할 수 있는가? (Was darf die Satire?)”
“모든 것. (Alles)”
이는 독일 작가였던 쿠르트 투홀스키가 1919년 남긴 말로, 풍자의 경계를 논의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그는 "풍자는 분명 모두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는 어떤 풍자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웃어야 하는가? 당신은 지금껏 마주한 모든 풍자를 한 치의 불편함 없이 받아들였는가? 모든 웃음을 ‘선’으로 받아들일지, 적당한 ‘선’ 안에서 품격 있는 웃음을 즐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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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논문」
김기태, 「풍자화 속 사회상이 비추는 개인의 욕망 풍자 연구」, 2021.
이유진, 「독일 풍자인가 노인혐오인가…공영방송의 ‘할머니 게이트’ 논란.」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정선학, 「유쾌한 배경지식_사회 풍자」, 유레카, (452), 82-87, 2021.
「기사」
“하니·한강 패러디 논란…민희진 ‘희화화’ 강연도 재주목”, 채널A 자막뉴스, 2024.10.21.
홍현진, “조롱거리 된 ‘하니’의 진심, ‘SNL 코리아’가 빚은 촌극”, 오마이뉴스, 2024.10.22.
한현정, “‘정년이’를 ‘젖년이’로...‘SNL’, 외설적 패러디 논란”, 매일경제, 2024.10.28.
지동현, “뭇매 맞는 ‘SNL 코리아’, 풍자와 불쾌감 사이”, 스포츠월드, 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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