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가을잠 자는 식물을 아시나요?
수습위원 김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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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오고, 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추석 연휴가 끝나는 목요일, 건대교지 독자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시나요?
여러분은 가을이 어떤 계절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가을 하면 화려(華麗)의 계절이라 생각해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억새들이 들판을 수놓고, 무뚝뚝한 초록색의 수목들은 이윽고 수줍게 붉어지며, 벼마저도 이에 질세라 노랗게 물들이는, 그런 화려함이요. 하지만, 이 화려의 계절에 홀로, 가을잠을 자는 식물이 있답니다. 화려의 순간에 잠에 들지만, 추위를 딛고 피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오늘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가을이 봄에게 주는 선물, 추식구근입니다.
추식구근은 가을에 심어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우는 구근식물을 말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 아니라, 구근(球根), 즉 양파 같은 둥근 뿌리에서 싹이 터 꽃을 피운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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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봄꽃 튤립, 수선화,
프리지아 등이 바로 추식구근이랍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추식구근 식물들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 매력을 더 소개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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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을 일찍 여는 식물
봄꽃 하면 벚꽃, 진달래, 철쭉을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추식구근 식물들은 마치 봄이 왔다는 걸 스스로 증명이라 하듯, 설원(雪原) 한복판에 꽃대를 올리며 겨울에 마침표를 찍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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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크로커스는 추운 겨울이 아스라이 끝나기도 전인 2월 초에 꽃대를 올려 피어나는 꽃입니다. ‘봄의 전령’이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눈이 녹기 전 서둘러 꽃을 피우며 아름다움을 뽐내죠. 우리가 알고 있는 봄꽃들이 채 잎도 올리기 전에 봄을 시작하는데요. 이러한 특성은 추식구근 식물들의 생존 전략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추식구근이 가을잠을 자고 봄을 가장 먼저 여는 이유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로운 타이밍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이 식물들은 혹독한 더위와 견디기 어려운 추위 속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위험한 계절에는 땅속에서 에너지를 저장하며 조용히 쉬어요. 그리고 날씨가 조금 풀리고 아직 경쟁 식물이 많지 않은 초봄이 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조용히 준비했던 영양분을 한데 모아 꽃을 피운답니다. 이렇게 하면 햇빛과 영양분을 남보다 먼저 차지할 수 있고, 곤충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수정과 번식도 마칠 수 있죠. 결국 추식구근의 ‘가을잠과 봄맞이 전략’은 계절의 리듬에 완벽히 맞춰 진화한 생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그 덕분에 우린 봄을 더 오래도록 느낄 수 있는 것이죠.
2. 가을이 고이 접어둔 화려함, 그렇게 봄의 빛으로
화려의 계절 가을이 남긴, 봄의 선물 추식구근. 누구보다도 간절히 그리고 오래 준비했기 때문일까요, 추식구근은 어떤 봄꽃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화려하답니다.
수선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모습에 반해 호수에 빠져 죽고,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났다고 해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두고 ‘자기애의 상징’이라 말하지만, 어쩌면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움’에 솔직했던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만큼 수선화는 자신을 사랑하게 할 만큼 고결하고, 고요하게 빛을 내는 꽃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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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봄을 대표하는 추식구근의 주인공이 있죠. 바로 튤립이에요. 튤립은 그 화려함으로 한 사회를 뒤흔든 꽃이었어요.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사람들이 튤립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혹되어, 한 알의 구근이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튤립 투기 파동’을 일으켰답니다. 물론 가치투기에 관한 사례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지만, 가치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던 당시 사람들이 금보다 튤립을 귀하게 여겼다는 건 그만큼 튤립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 아닐까요? 신화 속 소년을, 한 사회를 흔든 추식구근 식물들. 가을이 고이 접어둔 화려함은, 그렇게 봄의 빛으로 다시 피어난답니다.
3.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안다.
누구보다도 먼저 봄을 여는, 한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예쁜 추식구근 식물들. 그 아름다움이 고결한 까닭은 ‘영원하지 않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장 먼저 봄을 알렸던 추식구근 식물들은, 봄의 찬란이 가득한 4월, 다시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찬란했던 봄날의 부푼 꿈에 미련 없이, 꽃대를 비틀고 줄기를 말립니다. 땅에서 온 우리들임을 잊지 않았다는 듯, 여름이 오기 전 흔적도 없이 땅으로 들어가지요.
사람들은 금세 추식구근 식물들을 잊어버릴 겁니다. 아마 정이 들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화려의 계절인 가을이 오면, 이젠 우린 봄날의 튤립, 수선화, 프리지아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도 땅속에선, 의연히 설레는 봄날의 꿈을 머금은 채 수많은 추식구근들이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난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의 전령 크로커스의 꽃말이에요.
가을의 화려함에 묻혀도 괜찮습니다.
이윽고 추식구근들은 또다시 찾아올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묵묵히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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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심어보아요, 추식구근🌷
추식구근은 말 그대로 추식(秋植), 즉 가을에 심는 것이랍니다.
추식구근이 마음에 들었다면, 가을이 온 지금, 추식구근을 같이 심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1단계. 심기 전 준비하기
기온이 선선해지는 가을(9~11월)이 적기예요.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운답니다.
구근 상태 확인: 단단하고 곰팡이나 상처가 없는 구근을 고르세요.
우리 학교 근처 양재꽃시장에서도 다양한 추식구근을 구할 수 있답니다.
2단계. 장소와 흙 고르기
하루에 반나절 이상 햇빛이 들고, 물이 고이지 않는 배수가 잘되는 땅이어야 해요.
점토질이라면 모래나 부엽토를 섞어 배수를 개선하세요.
작은 화분에 심어보는 것도 방법이랍니다.
3단계. 구근 심기
구근 높이의 2~3배 깊이로 심어요.
예) 튤립은 약 10~15cm, 수선화는 12~18cm 정도.
뾰족한 부분이 위로 향하게 두세요.
4단계. 덮기와 물 주기
흙을 부드럽게 덮고 가볍게 눌러 고정시켜 주세요.
심은 직후 충분히 물을 주어 뿌리가 내릴 수 있게 합니다.
이후에는 과습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5단계. 겨울나기와 봄맞이
겨울에는 낙엽, 짚, 우드칩 등으로 덮어주면 동해를 막을 수 있어요.
봄이 오면 이를 걷고 햇빛을 충분히 받게 해주세요.
화분에 심었다면, 선선한 베란다로 옮겨주는 것도 방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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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국립수목원, 『한국의 구근식물 도감』, 2018.
농촌진흥청, 『구근식물의 재배와 생리적 특성』, 2016.
이소영, 『도시식물탐색』, 세미콜론, 2020.
사진 1: 이소영, 『도시식물탐색』
사진 2: PNGTree
사진 3: Longfield gar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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