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길 위에서 알게 되는 것들
수습위원 박지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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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도 수능이 끝난 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얼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재수를 마친 친구들과 마주 앉아 그동안의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처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친구들과 분위기 속에는 조금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아마도 서로가 지나온 시간을 알기에, 그리고 그 시간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기에 더 쉽사리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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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필적 확인 문구는 안규례 시인의 「아침 산책」 속 한 구절이었습니다.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수험생들이 새벽의 추위 속 긴장을 껴안고 시험장으로 향하던 순간, 이 문장은 잠시나마 부담을 덜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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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수능이 끝나고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그 밝은 문장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웃어 보이던 친구들, 반가우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말을 아끼던 친구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오히려 더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능이 아니더라도, 힘든 시기의 감정은 결과에 매몰되었을 때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개월 동안 스스로와 싸우는 하루를 견뎠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한번 도전하는 용기를 냈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들은 수치나 점수로는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원하는 목표에 닿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노력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그 말이 언제나 사실인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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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면 됩니다”
버락 오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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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저희를 조금씩 바꾸는 건 언제나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다듬어 갔던 습관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라고 말하면서도 책을 다시 펼치던 순간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던 마음들. 그 모든 것들이 결과와는 상관없이 한 사람의 시간을 깊게 쌓아 올립니다. 이 과정을 직접 보았다면, 그 누구도 헛되었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올해는 원하는 자리까지 닿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실패라고 단정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건너온 끝에 마주한 것은 실패라기보다, 잠시 멈춘 듯 보이는 하나의 지점일지도 모릅니다. 길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더디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고,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다음 걸음을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멈춤이나 후퇴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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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례 시인의 아침 산책은 이렇게 끝납니다.
‘한 생이 계절을 잠시 돌아갔다가
그 길목을 따라
다시 돌아왔구나’
한 계절을 돌아온 당신의 자리에, 조금 다른 빛이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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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0년 필적 확인 문구
- 2015년 /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문태주, 돌의 배)
- 2016년 / 넒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 2017년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정지용, 향수)
- 2018년 / 큰 바다 넒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김영랑, 바다로 가자)
- 2019년 /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김남조, 편지)
- 2020년 /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박두진, 별밭에 누워)
- 2021년 /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나태주, 들길을 걸으며)
- 2022년 /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이해인, 작은노래)
- 2023년 /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한용운, 나의 꿈)
- 2024년 /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양광모, 가장 넓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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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김지예, ”수험생 필적 확인 문구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서울신문,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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