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시작의 계절
봄은 언제나 '시작'의 계절로 명명된다. 겨울을 견뎌낸 것들 위로 연둣빛 생동감이 번지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캠퍼스는 그 변화의 최전선이다. 개강의 공기, 낯선 얼굴들, 어딘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 모든 것이 앞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은 이 계절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봄은 밝고 희망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봄은 가장 많은 사람이 스스로 삶을 내려놓는 계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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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에서는 봄을 오히려 경계해야 할 시기로 본다. 이른바 '스프링 피크(Spring Peak)' 현상이다. ‘2022년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자살률은 봄철인 3월에서 5월 사이 정점을 찍는다. 우리의 직관과 어긋나는 대목이다. 흔히 어둡고 고립된 겨울이 더 위험할 것이라 짐작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무너지는 시점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봄이다.
겨울을 지나며 우울 뿐만 아니라 무기력도 깊어진다. 생각은 맴돌아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종의 정지 상태. 그러나 봄이 되어 일조량이 늘면 몸의 리듬이 먼저 깨어난다. 다시 움직일 에너지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 감정이 함께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울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실행에 옮길 동력만 먼저 돌아오는 상태. 이 어긋남이 가장 위험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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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시작의 압박
그러나 이 현상을 생물학적 변화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봄이라는 계절이 사회적으로 짊어진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봄은 늘 '새로운 시작'으로 규정된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요구. 이 계절은 개인의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동일한 속도와 방향을 강요한다. 캠퍼스는 그 압박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공간이다. 강의실의 첫인상, 동아리 모집, 새로운 인간관계, 그리고 어디서나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비교의 시선들. 모두가 잘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단 한 번의 뒤처짐은 쉽게 개인의 결함처럼 느껴진다.
특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이들에게 봄은 시작의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흘러가는 세계에 뒤늦게 던져진 감각에 가깝다. 타인의 속도가 기준이 되는 순간, 나의 망설임은 곧 낙오로 번역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봄은 설레는 계절이 아니라, 그저 견뎌내야만 하는 계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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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 현상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조언은 이미 움직일 힘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말이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 그것은 격려가 아니라 또 다른 압박이 될 수 있다. 빛이 강할수록 그 아래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봄의 눈부심이, 그 눈부심을 함께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과도한 자극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어쩌면 문제는 봄이라는 계절 자체가 아니라, 봄을 대하는 우리의 단일한 시선에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오랫동안 봄을 희망과 활기라는 하나의 언어로만 읽어왔다. 그 이야기에 합류하지 못한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갈 곳을 잃은 마음들은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캠퍼스의 봄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닿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봄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세계를 필사적으로 따라잡아야 하는 시간일 뿐이다.
봄은 여전히 온다. 다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그 봄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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