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가 소진되었습니다
번아웃 증후군, 영어로는 burnout syndrome. 번아웃은 이름 그대로 다 타서 없어진 (burn out) 상태를 이른다. 사람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설명할 때 대개 증기기관차를 예시로 든다. 증기기관차는 연료를 태워서 물을 끓이고, 그 증기의 힘으로 철도를 달린다. 그러나 연료가 전부 떨어진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에 멈추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꿈이나 목표, 체력과 여유… 저마다 연료로 삼는 것은 다르지만 그 연료가 언젠가 소진된다는 점은 증기기관차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연료로 삼던 것은 꿈이었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다. 어느 순간 힘에 부치는 일이 생길 때는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되새겼다.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는 남는다.’ 이 순간의 고단함과 벅참에 휘둘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일시적인 감정에 걸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나는 ‘무작정 달리기’를 선택했다. 동아리, 기자단, 서포터즈, 공모전… 그렇게 많은 일들에 신경을 쓰면서도 내가 처한 상태는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많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한계에 마주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대학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했다. 나는 남들이 추켜세우던 것만큼 글을 잘 쓰지도 못했고, 흥미 있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깊지도 않았다. 그저 깊은 우물 속에서 멋진 뒤구르기나 하는 한 마리의 개구리였을 뿐이다. 본인만의 신념과 특기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을 보며 돌연 나의 꿈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꿈을 가지는 게 맞을까? 점점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설마 내가
번아웃의 증상은 대개 같다. 초기에는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기분이 든다.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잔병치레를 앓는 것처럼 두통이 생기거나 숨이 차기도 한다. 그다음 증상은 기분에서 나타난다.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쉽게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한다. 종국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내가 해 온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번아웃에 걸린 이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큰데, 업무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이 일상으로까지 전염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무기력함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때까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고질적으로 두통과 복통을 달고 살았고, 천성 자체도 다소 신경질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번아웃을 의심해보게 된 것은 해야 할 일을 포기한 후부터였다. 이전에는 일이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했을 텐데 너무도 쉽게 ‘더는 못 하겠다’고 외친 것이다. 실제로도 근래의 나는 이상했다. 평생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좋아하던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능률은 자꾸 떨어졌다. 모든 게 힘에 부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여섯 시간의 숙면뿐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너 번아웃 온 거 아니야?’
내가 번아웃이라니
내 곁에서 자주 우려를 표했던 동기였다. 너 그렇게 일하면 빨리 죽어, 수명 닳아, 진짜 큰일 나… 번아웃을 겪은 적이 있는 동기는 나의 증상이 본인과 같다고 느낀 것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도 번아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매경이코노미’의 번아웃 신드롬 설문조사에서도 1000명의 직장인 중 862명이 번아웃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한국인이 가진 ‘완벽주의’ 성향의 탓이 크다. 완벽주의란 보다 나은 결과가 있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하는 신념을 말한다. 이는 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성취를 돕지만 때로는 능률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결함을 남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과도하면 지나치게 사소한 일에도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이다.
나와 동기 모두 달려 나가는 증기기관차처럼 높은 포부를 가지고 ‘빨리빨리’와 ‘완벽하게’를 외쳤다. 그러나 빠르고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더 빨리, 연료를 닳게 만들었을 뿐이다.
쉬었다 가자
번아웃은 원대한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실수 없이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등을 떠밂과 동시에 발목을 잡는 것이다. 무거운 발을 오래 끌면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자리에 멈추게 된다. 그래서 나는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요즘의 나는 일정을 꽉꽉 채워 일을 맡기보다는 중간중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 두고, 무작정 달려가는 대신에 가야 할 방향을 먼저 살피는 중이다.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는 남겠지만, 결과보다도 나의 건강이 내 곁을 더 오래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이제야 당연해지고 있었다. |